자사고 취소 줄잇는데…`고교서열화 정점` 영재학교만 무풍지대

by신중섭 기자
2019.07.12 06:18:00

자사고 후폭풍, 내년엔 외고·국제고로 확산될 듯
재지정 평가 안 받는 영재학교는 선행학습도 가능
서울과학고, 졸업생 5명 중 한명꼴로 의대 진학
"과학인재 양성 설립목적 달성하려면 규제 필요"

전국교직원노조, 서울교육단체협의회 회원들이 9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율형사립고 폐지, 일반고 중심의 평준화 체제 재편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올해 재지정 대상 자율형사립고(자사고) 24곳 중 11곳이 탈락하면서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자사고와 마찬가지로 고교서열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아온 영재학교(영재고)는 사실상 무풍지대에 놓여있다. 학생 우선선발권을 가지면서도 재지정 평가를 받지 않아서다.

11일 교육계에 따르면 내년에는 자사고 15곳과 외고 30곳이 재지정 대상이다. 국제고는 7곳 중 6곳이 재지정 평가를 받는다. 교육계에서는 현 정부의 고교체제 개편이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목표로 추진되는 만큼 상당수 학교들이 지정 취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는 자사고 재지정에 따른 후폭풍이 거셌다면 내년에는 외고·국제고까지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 영재학교는 사실상 무풍지대다. 국공립학교인 영재학교는 지난 2017년 12월 시행된 영재교육 진흥법에 근거해 설립됐으며 영재교육과 과학기술인재 양성이 목표다. 서울과학고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경기·인천·광주·대전·대구·부산·세종 등에 8곳이 있으며 매년 약 800명의 신입생을 선발한다. 영재학교는 자사고나 특목고와 달리 재지정 평가를 받지 않는다. 비슷한 설립목적을 가진 과학고도 자사고·외고와 같이 5년 주기로 재지정 평가를 받는 것과 비교하면 특혜라 할 수 있다. 이들 학교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적용받지만 영재학교는 영재교육진흥법을 적용받아서다.

상황이 이렇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자사고 지원율은 하락한 반면 영재학교 경쟁률은 상승하고 있다.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최근 영재학교 경쟁률은 △2018학년도 14.01:1 △2019학년도 14.43:1 △2020학년도 15.32:1 등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자사고나 외고가 사라질수록 영재학교의 인기는 더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매년 원서접수를 기준으로 영재학교의 입학전형은 4월부터, 과학고는 8월부터 시작된다. 영재학교는 현행 고교 입시체계에서 가장 먼저 입학전형을 실시, 우수학생을 선점하고 있다. 더욱이 입학전형 자체가 선행학습을 받은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짜여져 있어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는다. 공교육 틀 내에서는 선행학습이 불법이라 사교육 도움 없이는 영재학교 입학이 힘들다는 것. 영재학교에 입학려면 서류전형 외에도 수학·과학 지필고사, 영재캠프, 심층면접 등을 치러야 한다.

영재학교는 이처럼 고교서열화의 정점에 있는 학교지만 사실상 감시 장치가 없다는 점이 문제로 거론된다.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설립된 학교라 일명 선행학습금지법(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적용도 받지 않는다. 선행학습금지법은 초중등교육법·고등교육법에 근거해 설립된 학교들이 적용 대상이다. 특히 일부 영재학교는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라는 설립목적과 달리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5~2018년 영재학교 진학 현황에 따르면 4년간 서울과학고를 졸업한 학생 463명 중 100명(21.6%)이 의대에 진학했다.

교육계에서는 영재학교에 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영재학교는 선행학습금지법 적용과 재지정 평가에서 벗어나 있다”며 “영재학교에도 선행학습금지법을 적용하고 재지정 평가를 받게 해야 과학기술인재 양성이란 설립목적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0 과학영재학교 및 과학예술영재학교 지원 현황(사진=종로학원하늘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