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금융'이라던 팝펀딩에 외국 투자자도 돈 날려…국제적 망신

by박종오 기자
2020.07.24 00:11:00

룩셈부르크 등록 실버혼 436억 투자
환매 중단에 투자금 전액 날릴 판
NHN도 팝펀딩에 투자…"이미 손실처리"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국내 사모펀드(한국형 헤지펀드) 사기에 외국 투자자까지 휘말려 투자금 수백억 원을 날리게 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 펀드’, 이탈리아 범죄 조직 마피아 연루 의혹이 불거진 하나은행의 ‘헬스케어 펀드’ 등 국내 사모펀드 투자자가 해외 헤지펀드 재투자 부실로 손해를 본 경우는 있었지만, 반대로 외국 기관 투자가가 한국 헤지펀드에 투자했다가 사기로 손실을 입게 된 사례는 처음이다. 정부가 금융 혁신이라며 육성한 한국형 헤지펀드가 해외 투자자 피해로까지 이어지며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게 된 것이다.

23일 금융 투자 업계에 따르면 유럽 룩셈부르크 소재 ‘실버혼(Silverhorn)’ 펀드는 IBK투자증권을 통해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에 총 436억원(설정액 기준)을 투자한 것으로 파악됐다.

실버혼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자산 투자를 목적으로 2010년 홍콩 증권선물위원회의 인가를 받은 투자 자문사다. 현재 홍콩과 싱가포르에 지사를 두고 있다. 한국의 개인 간 대출(P2P) 업체인 팝펀딩과는 지난 2016년 첫 투자 계약을 맺고 투자액을 확대해 왔다.

문제는 팝펀딩이 사기 업체로 드러나며 투자금 전액을 날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팝펀딩 사모펀드 투자액 총 1668억원(올해 5월 말 기준) 중 60%가 넘는 1059억원의 투자금 상환이 중단된 상태다.

팝펀딩은 TV 홈쇼핑에서 의류·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판매 물건을 담보로 잡는 ‘동산 담보 대출’ 상품을 주로 취급해온 회사다.

당초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개인 소액 투자를 받다가 증권사·자산운용사와 손잡고 사모펀드 상품을 선보이며 자산가와 기업 등 ‘큰 손’의 투자를 유치했다. 팝펀딩은 과거 문재인 대통령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선거 자금 마련을 위한 펀드를 출시하고, 작년 말에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회사를 직접 방문해 ‘혁신 금융 사례’라고 극찬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허위 대출과 투자금 돌려막기 정황 등을 파악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검찰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신용정보법 위반·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팝펀딩 신현욱 대표와 임원, 사기 대출 브로커 등 3명을 구속기소하면서 사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팝펀딩은 201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2년간 가짜 대출자와 대출 서류를 만들어 투자금 수백억 원을 가로챘다. 검찰은 팝펀딩이 부실 대출 돌려막기에 사용한 최소 540억여원을 투자자들이 날리게 됐다고 밝혔다.

팝펀딩 사모펀드 400억원가량을 판매한 한국투자증권은 자비스자산운용 등 운용사의 자체 회계 실사를 토대로 펀드 투자 원금의 75~85%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했다고 투자자들에게 통지했다. 1억원을 투자했다면 최대 8500만원을 날렸다는 의미다.

금감원 관계자는 “판매사와 운용사 검사를 나가서 팝펀딩의 재고 자산 보유 현황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실제 회수 가능한 투자금이 얼마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IBK투자증권 관계자는 “실버혼은 장기 투자 목적으로 팝펀딩 펀드에 투자했던 것”이라며 “아직 실버혼 측으로부터 별도의 연락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 투자로 국내 대기업도 돈을 날리게 됐다.

국내 최대 정보기술(IT) 공룡 기업인 네이버(035420)에서 게임 사업을 분할해 설립한 회사인 NHN(035420)은 IBK투자증권을 통해 팝펀딩 펀드에 49억원을 투자했다.

NHN은 지난 2016년 간편 결제 서비스 사업 확장을 목적으로 팝펀딩에 30억원을 출자해 회사 지분 21%를 보유하고 있다가 최근 이를 전액 투자 손실액으로 처리한 바 있다. 팝펀딩 본사도 경기도 판교의 NHN엔터테인먼트 사옥에 입주해 있다.

NHN 관계자는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 투자액 일부를 이미 투자 손실로 처리했고 남은 투자액도 앞으로 모두 회계상 손실액으로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팝펀딩 같은 P2P 업체는 당초 정부 지침(가이드라인)상 명확한 규정이 없는 탓에 법인·사모펀드 등 외부 기관 투자가의 투자금을 유치하지 못했다. 하지만 팝펀딩은 이 같은 규제의 공백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큰 손의 투자를 끌어들이며 기존 투자 부실을 감추는 데 사용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뒤늦게 사모펀드의 P2P 업체 투자액을 개별 대출 상품 투자액의 최대 40%로 제한하는 법령을 마련해 다음달 말부터 시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