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주연의 반전 드라마 '영웅은 하늘이 내린다'

by정철우 기자
2008.08.22 14:52:55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국민 타자' 이승엽(32.요미우리)이 또 한번의 반전드라마를 썼다. 각본을 쓰라고 해도 그렇게 짜기 힘들만큼, 상상 속에서나 있을법한 한방을 때려냈다.

이승엽은 22일 벌어진 일본과 2008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서 4번타자로 기용됐다. 4번타자 다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4번타자 다운 모습을 보여줄거란 믿음때문이었다.
 
이승엽은 이 경기 전까지 홈런 없이 1할대 타율에 허덕이며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기대는 보기 좋게 무너지는 듯 했다. 이승엽은 좀처럼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냥 아웃된 것이 아니다. 흐름까지 끊는 뼈아픈 아웃 카운트 역할을 했다.

2회 첫 타석에서 삼진을 당한 이승엽은 4회 무사 1,3루서 2루수 앞 병살타를 때렸다. 0-2로 뒤지고 있는 상황. 1점은 따라갔지만 4번타자의 병살타는 살아나는 팀의 기세를 꺾는 타격이었다.

다음 타석에도 아쉬움만 남겼다. 1사 1루서 다시 이승엽의 타석. 김경문 감독은 히트 앤드 런을 지시했다. 타격감이 안 좋은 만큼 가벼운 스윙을 해달라는 주문.

그러나 이승엽은 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초구 바깥쪽 직구를 맥없이 헛스윙. 이때 2루로 달리던 김현수가 태그 아웃되고 말았다.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가볍게 툭 맞히기만 했어도 됐지만 이승엽의 방망이는 그마저도 해내기 버거워 보였다.



이대로 끝이라면 이승엽 개인에게나 한국 야구에나 커다란 짐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말 그러나 이승엽은 이승엽이었다.

'이젠 안된다', '끝난 건 아닐까'라는 상심의 크기가 커 질수록 이승엽의 방망이는 결정적인 한방이 그만큼 가까워졌음을 또 한번 보여줬다.

2-2 동점이던 8회 1사 1루. 이승엽은 이와세를 상대로 우월 투런 홈런을 때려내며 승부를 갈랐다. 한국 대표팀 선수단, 그리고 모든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던 한방이 드디어 터진 것이었다.

볼 카운트 2-1에서 가운데 몰린 직구를 걷어올려 우측 담장을 훌쩍 넘겨버렸다. 일본 벤치를 침묵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한방이었다. 이후 경기는 보나 마나였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점수를 추가해갔고 일본은 맥없이 무너졌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2년 한국시리즈, 그리고 2004년 재팬시리즈로 이어지는 반전의 홈런 시리즈를 이번에도 재현한 것이었다.

영웅은 진정 하늘이 내리는 것임을, 그를 불신하던 범인(凡人.평범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한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