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나 "프랑켄슈타인의 '낮져밤이', 바로 나예요"

by이정현 기자
2018.07.23 06:00:00

‘천상여자’ 엘렌 VS ‘카리스마’ 에바
180도 다른 두 여인으로 사는 맛 ‘짜릿’
섬세한 연기로 스펙트럼 넓히고
시원시원 넘버로 관객 사랑 듬뿍

뮤지컬배우 박혜나(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뮤지컬배우 박혜나는 얼굴이 두 개다. 현재 출연 중인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다. 동생을 지극히 아끼는 정숙한 여인인 엘렌과 투기장의 여주인 에바 등 1인2역을 맡았다. 얼핏 한 사람이 연기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온도차가 크다.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동생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여인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투사를 조련하는 이로 변신하기까지 금방이다.

“고충은 있지만 연기하는 순간에 집중하면 괜찮아요.” 지난 19일 ‘프랑켄슈타인’을 공연하고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박혜나를 만났다. 연기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관객과 호흡하다 보면 어려운 건 다 잊는다”라고 답했다. 엘렌이거나 에바거나 쉬운 연기는 없다. 날씨가 더워서 속눈썹이 자주 떨어진다고 툴툴대며 웃었다.

“에바가 부르는 넘버 ‘남자의 세계’가 워낙 시원시원한 느낌이라 좋아하는 관객이 많아요. 다소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지는 ‘프랑켄슈타인’을 환기하는 역할이기도 하죠. 하지만 조금 더 집중해서 연기하는 건 엘렌인 거 같아요. 무거운 마음을 품어야 하기 때문이겠죠? 게다가 엘렌의 의상이 조금 더 두꺼워서 요즘처럼 더울 때는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서정성 ‘엘렌’ vs 카리스마 ‘에바’…첫 ‘1인2역’

박혜나가 열연 중인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19세기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유럽이 배경. 인간을 두고 금지된 실험을 하던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창조한 괴물, 빅터의 누나인 엘렌과 연인 줄리아의 이야기를 그린 창작뮤지컬이다. 박혜나는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처음으로 1인2역에 도전했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성향이 다른 두 캐릭터를 잘 살려 관객의 호응을 샀다. 넘치는 여성미와 강렬한 카리스마를 ‘프랑켄슈타인’ 한 작품에 녹였다. 그가 연기한 1막의 엘렌과 2막의 에바는 ‘낮져밤이’(낮과 밤의 모습이 다르다는 뜻)라 할 만했다. 박혜나는 “‘낮져밤이’가 뭔가요”라고 되묻더니 뜻을 알고 난 후 한참 웃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세번째 앙코르공연을 할 정도로 인기가 있고 꾸준히 보러오는 관객이 많은 작품이라 책임감이 더 컸어요. 왕용범 연출을 비롯해 모든 제작진이 극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죠. 상견례를 하자마자 초심을 다잡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죠. 뭔가 남달랐어요. 한국이 자랑하는 창작뮤지컬이니 더 그랬겠죠.”



박혜나는 올해로 데뷔한 지 12년이다. 데뷔작인 뮤지컬 ‘미스터마우스’부터 파격 캐스팅이라 불렸던 ‘위키드’, 현재 힘 쏟고 있는 ‘프랑켄슈타인’ 등 출연작 목록이 빼곡하다. 그는 “데뷔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나 모르겠다”고 그간을 돌이켰다.

요즘 들어 뿌듯함을 느끼는 건 별명이다. ‘위키드’와 뮤지컬 ‘데스노트’ 등 남성성이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 관객에게 얻었던 ‘혜나옵’(박혜나 오빠의 준말)이란 별칭이 어느새 사라졌다. 뮤지컬 ‘나폴레옹’에서 연기한 조세핀과 이번 ‘프랑켄슈타인’에서의 엘렌에서 보여준 여성미 넘치는 캐릭터 덕일 것이다. 박혜나는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해 ‘혜나옵’이란 별칭이 잠시나마 잊힌 게 기분 좋다. 연기 스펙트럼을 조금이나마 넓힌 거라 여겼다.

“이전과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려고 욕심을 부리진 않았어요. 저는 사실 좋아하는 게 딱히 없거든요. 하지만 잘하고 싶은 건 차고 넘쳐요. 출연기회를 얻을 때마다 속에 탈이 날 정도로 힘을 쏟는 이유죠.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만 제가 특별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은 저도 뮤지컬을 알기 전까지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져 있었거든요. 무대에 서는 배우인생을 살리란 생각도 못했죠.”

△“인생에 도움 안 되는 경험은 없어”

박혜나의 2018년은 다사다난하다. 지난 2월 평소 가깝게 지내던 여덟 명의 배우와 함께 연극 ‘경환이’를 만들었다. 박혜나가 연출을 맡았다. 남편이자 동료인 배우 김찬호를 돕겠다고 시작했다가 요직까지 맡았다. 박혜나는 “은근히 잘된 공연”이라며 “보러오는 관객이 많은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배우로서 연출의 마음을 이해한 게 가장 큰 득”이라고 말했다.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경험은 없는 것 같아요. 연극뿐만 아니라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졌던 학창시절도 소중해요. 그때 느꼈던 감정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연기하지 못 했을 거에요. 무엇이든 흐름이 있듯 그것 위에 올라 가고 픈 혹은 하고 픈 것을 해야겠죠. 속단은 피해야 해요. 그래야 후회가 없죠.”

‘프랑켄슈타인’으로 뜨거운 여름을 보낸 후 오는 9월에는 새 작품에 출연한다. 국내서 처음 공연하는 영국뮤지컬 ‘오디너리데이즈’다. 각자 사연이 있는 네 명의 뉴요커가 주인공인 송스루뮤지컬이다. 박혜나의 새로운 도전이다.

“이제 절반을 넘겼는데 올해는 정말 다사다난했어요.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당하지 않았나 반려견이 다치질 않았나. 하지만 액땜이었나 봐요. 작품마다 이렇게 잘되는 걸 보면요. 하하.”

뮤지컬배우 박혜나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 에바를 연기하고 있다(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뮤지컬배우 박혜나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 엘렌을 연기하고 있다(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