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사회책임투자 외면하나…투자비중 줄여

by박정수 기자
2018.08.14 06:00:00

사회책임투자 비중 감소…13.7%→11.4%
"공단의 정책적 판단에 의해 필요한 경우"…모호한 투자지침
연구진 5년 내 30%까지 확대 제시…"하반기 기금위서 최종 결정"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국민연금기금(이하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SRI)가 지지부진하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함께 책임투자를 활성화하겠다던 국민연금의 목표와는 달리 오히려 책임투자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아울러 국민연금이 책임투자에 모호한 기준을 제시하면서 위탁을 맡긴 이른바 착한 펀드에는 문제 기업도 다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국민연금이 지난 10일 공시한 책임투자 현황을 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주식 위탁운용 가운데 책임투자형 펀드는 총 6조8775억원 수준이다. 2016년 말과 비교하면 5070억원 가량이 늘었다. 다만 이 기간 국내주식 위탁운용 전체 규모가 46조3984억원에서 60조2198억원으로 14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책임투자형 펀드 비중은 오히려 13.73%에서 11.42%로 감소한 것이다.

작년 말에만 해도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투자가치 증대수단으로 책임투자 활성화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 ‘책임투자·스튜어드십 코드 관련 연구’ 연구용역을 맡은 고려대 산학협력단 연구진은 중간보고를 통해 10% 수준의 책임투자 위탁펀드 규모를 향후 1~2년 내에 20%까지 늘리고 3~4년 내에는 25%, 5년 이후 30% 확대를 제시했다. 국민연금도 이를 받아들여 세부 방안을 마련해 책임투자를 늘리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책임투자 비중을 줄이는 추세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아직 연구진의 안을 토대로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을 만들고 있다”며 “세부적인 안을 조정해 올해 안으로 기금위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책임투자 대부분을 위탁운용사에 맡기고 있는 국민연금은 운용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기준도 모호하다. 국민연금이 대외적으로 제시한 책임투자를 위해 고려하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기준을 보면 사회 부문에 하도급 거래, 협력업체 지원 활동 등이 평가지표에 들어간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위탁사에 제시한 투자지침을 보면 △주식관련 증권 및 기업어음(CP) △주가지수선물 등 파생상품 △수익증권, 투자계약증권, 파생결합증권, 집합투자증권 등 실적배당금융상품 일체 △발행주식수 5만주 이하 주식 △관리대상종목 △술, 담배, 도박 관련 주식 △불공정매매, 시세조종 등 문제의 소지가 있는 종목 △기타 공단의 정책적 판단에 의해 필요한 경우 등 총 8개 항목이 운용대상 제한에 해당한다. 하지만 현재 책임투자펀드에는 갑질 등으로 문제가 됐던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국민연금이 5% 이상 보유한 종목 가운데 책임투자펀드가 투자하는 종목(150개)을 보면 상위 30개사 가운데 10개사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받은 종목이다.

예컨대 GS건설(006360)의 경우 지난해 공정위가 불공정 하도급 거래 행위에 대해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15억원을 부과했다. 올해는 검찰이 5000억원에 달하는 GS건설 관급공사 불법 수주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대림산업(000210)의 경우 지난 3월 공정위로부터 한수건설을 상대로 한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받았고 신세계(004170), 신세계푸드(031440)도 공시위반, 허위자료 제출, 허위신고 등을 이유로 공정위의 제재를 받은 바 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책임투자형 펀드 벤치마크 지수만 제시하고 기준 대비 수익률을 상회했는지만 주로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작년 말 기준 국민연금이 책임투자형 펀드 위탁사를 10개사에서 7개사로 줄였는데 제외한 이유도 성과부진 때문이다. 제외된 위탁사는 프랭클린템플턴투자신탁운용(운용규모 8800억), 한화자산운용(2500억), 프렌드투자자문(700억) 등 3곳이다. 또 다른 운용업계 관계자는 “책임투자펀드가 투자하고 있는 종목 대부분이 국민연금이 제시한 종목으로 보면 된다”면서 “지수에 편입된 종목 외에 다른 종목을 넣어 기준 대비 수익률이 하회할 경우 불이익이 있다. 국민연금이 제시한 종목 비중을 조절하는 정도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책임투자형 펀드 성과평가는 국민연금과 에프앤가이드가 함께 만든 벤치마크 지수를 이용한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벤치마크 지수와 관련한 세부 사항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