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라면·과자가격 오르나…밀 가격 8년만 최고치에 '눈치'

by김범준 기자
2021.05.07 06:30:00

국제 밀 가격 7.4달러…2013년 이후 역대 최고
가뭄·태풍 등 기상악화로 주요 곡물 생산 줄고
코로나 여파 농산물 소비, 해운비용 늘며 가격↑
재료값 상승에 빵 가격인상 이어 라면도 '눈치'

[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대중적 서민음식인 빵·라면·스낵 등이 가격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국제 밀 가격이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최근 밀 가격이 심상치 않게 치솟으면서다. 제분·제과업계에서는 원재료값 상승으로 가격을 올리고 싶으면서도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수입곡물을 원료로 하는 밀가루 등이 진열돼 있다.(사진=뉴스1)
7일 미국소맥협회에 따르면 국제 밀 가격 기준인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의 밀 선물가격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기준 부셸(BU·곡물량을 세는 단위) 당 7.42달러(약 8340원)를 나타냈다. 2013년 2월(7.12달러) 이후 8년여 만에 역대 최고가다.

밀 가격은 특히 올 들어 10%대 높은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CBOT 밀 선물가격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각) 기준 부셸당 7.1달러에서 1주 만에 약 4.5%(0.32달러, 약 360원) 올랐다. 이는 지난 3월 6.7달러 대비 한 달 새 약 10.7%(0.72달러, 약 811원) 급등한 수준이다.

최근 국제 밀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것은 지난해부터 생산과 운송 전반에 걸쳐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다.

지난해부터 남미지역 가뭄이 계속 이어지는 등 주요 곡물 생산지의 작황이 악화한 데다, 올 들어 미국 북부와 캐나다 지역에도 서리 피해와 가뭄까지 겹친 영향이다. 최근에는 유럽과 러시아 지역에서도 이상 기후가 이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밀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밀 생산 부진으로 공급량이 줄었지만, 수요는 늘면서 밀 가격 상승세를 더욱 견인했다. 최근 중국의 밀·옥수수 등 농산물 대량 수입, 전 세계적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소독용 에탄올 수요증가로 원료로 쓰이는 곡물 사용량이 증가한 것 등의 영향을 받았다. 대체재인 옥수수와 대두의 가격 상승도 밀 가격 상승 요인이다.

또 코로나19에 따른 각 나라별 방역조치로 선적국 선박 및 선원, 운송품들에 대한 검역이 강화되면서 항구에 드나드는 배가 밀리는 체선이 많아진 탓도 있다. 체선이 늘면 인건비와 체제비, 유류비, 각종 기회비용이 늘면서 해운 운송비가 오르게 된다. 최근 코로나19 백신 보급 시작 등으로 글로벌 경기가 점차 회복되면서 화물 물동량이 늘어난 요인도 있다.

미국소맥협회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농산물 대량구매와 밀 주요 생산국의 기상 악화가 지속하면서 당분간 국제 밀 가격 상승세는 불가피하다”며 “호주 태풍 피해로 인한 원료 수급 차질 우려도 밀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는 현재 국내 밀 소비량의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중 호주산 밀 비중이 약 45%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지난달 호주 지역을 강타한 열대성 태풍 ‘세로자’가 내륙 운송을 위한 도로와 철도, 수출을 위한 항만시설 등에 큰 피해를 주면서 각종 원료 운송과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과 업계에서는 이번 밀과 쌀·대두 등 주요 곡물가격 상승세가 올 하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 ‘국제곡물’ 4월호에 따르면 올 2분기 곡물 수입단가는 식용 109.4포인트(한국 수입가, 원화 기준), 사료용 107.6포인트 등 전 분기 대비 각각 8.9%, 8.1%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라면 수요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최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 모습.(사진=연합뉴스)
현재 국내 밀가루 가격은 2013년 이후 동결한 상태다. 그동안 밀 가격이 안정세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처럼 국제 밀 가격 인상세가 계속될 경우 밀을 주 원료로 하는 제분·제과업계의 부담이 늘게 된다. 결국 밀가루와 부침가루 제품뿐 아니라 빵, 라면, 과자, 스낵 등의 가격이 줄줄이 인상할 수 있다는 우려가 따른다.

제과업계에서는 국내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업체 1·2위 SPC 파리바게뜨와 CJ푸드빌 뚜레쥬르가 이미 올 들어 한 차례 빵 가격을 인상했다. 각각 평균 인상폭은 5.6%와 9% 정도다. 과자와 스낵류를 생산·판매하는 롯데제과, 해태제과, 빙그레 등 제과업체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제분업계 1위 CJ제일제당은 소비자 물가를 고려해 당분간 밀가루 판매가를 유지한다는 방침이지만, 비용 상승 압박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내부적으로 가격 인상을 고민하고 있다.

라면업계에서도 가격 인상 눈치 보기에 들어갔다. 밀가루 오름세에 라면의 주원료인 소맥분 가격이 최근 1년 사이 약 40%나 오른 데 이어, 또 다른 주재료인 팜유 가격도 10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이며 최근 1년 사이 약 82% 급등하면서다.

이에 라면 제조사들은 가격 인상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대표적 서민음식이라는 특성상 소비자 가격을 올렸다가 쏟아질 여론의 뭇매를 우려해 쉽사리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상황이다.

앞서 오뚜기는 지난 2월 제품별 라면 가격을 평균 9.5% 인상하기로 결정했다가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에 못 이겨 이를 철회한 바 있다. 오뚜기는 지난 2008년 이후 약 13년째 주력제품 ‘진라면’ 소비자 가격을 단 한 차례도 인상하지 않았다.

라면업계 1위 농심도 주력제품 ‘신라면’ 가격을 지난 2016년 이래 동결한 상태다. 농심도 당분간 라면 가격 인상 계획은 없지만 상황을 좀 더 지켜본 다음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삼양식품도 2017년 주력제품 ‘삼양라면’ 가격을 인상한 이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라면업계 ‘빅3’ 기업 모두 수년째 소비자 부담을 의식해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곡물 등 원재료 가격 급등 부담으로 관련 제품 가격 인상 필요성에 대해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은 분위기”라며 “대중적 음식이라는 특성상 소비자들이 민감해하고 시장 경쟁도 치열한 만큼 과감하게 가격 인상을 단행하기도 부담인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