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병우 전 수석에게 휘둘린 ‘맹탕 청문회’

by논설 위원
2016.12.23 06:00:00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어제 청문회에 얼굴을 드러냈지만 그의 답변을 듣는 국민들은 오히려 답답한 심정이었다. 한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었으면서도 국정농단 사태를 초래한 책임에 대해 남의 일처럼 답변하는 모습에서 분노를 느껴야 했다. “송구하다”는 입장 표명이 없지 않았지만 원론적 차원의 유감 표명에 불과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추궁하는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자기변명뿐이었다.

우 전 수석은 국정농단의 핵심인물인 최순실씨와의 관계에서나 가족회사의 자금 유용 등에 대해 “모르겠다”거나 “아니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의원들의 질문 공세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또렷한 목소리로 답변을 이어간 것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경우와 비슷했다. 자신은 민정수석으로서 맡은 바 업무에 충실했다는 당당한 태도였다. 일부 의원들이 질문 도중 할 말을 잃고 한숨을 내쉰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토록 당당하고 잘못이 없었는데도 그동안 청문회 출석을 피하려고 교묘히 거처를 숨기며 피해 다녔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집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으나 수긍하기 어렵다. 연일 자신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기사가 언론을 장식하고 있었는데도 법적인 허점을 이용해 청문회 출석을 기피했다면 그 자체로 공인 자격에 미치지 못한다.

어쩌면 우 전 수석에 대한 의혹이 사실 이상으로 부풀려진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민정수석이라는 직책상 그에게 의혹의 눈길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실제로 의혹을 살 만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발뺌하는 그의 모습에서 어떻게든 책임지지 않으려는 우리 공직사회의 단면을 바라보게 된다.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현행 청문회 제도가 지닌 문제점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이번에도 어제까지 모두 5차례의 청문회가 열렸지만 국정농단 의혹 규명은 부족했다. 핵심인물인 최씨조차 출석을 거부한 탓이다. 더욱이 국정조사특위 의원들 사이에 위증교사 의혹까지 불거져 특검에 수사가 의뢰된 마당이다. 이런 식의 ‘맹탕 청문회’라면 열지 않는 게 낫다. 설령 구치소를 찾아가 최씨의 증언을 직접 듣는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