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고위관료들 '교수·백수' 아니면 '잠수'

by김정민 기자
2014.09.01 07:30:00

현오석 전 부총리 등 전직 장차관들 대거 교수로
등산, 운동 등 오랜 공직생활서 지친 심신 달래
잡음 속 퇴진 인사들 주변 연락 끊고 잠적도

[이데일리 김정민 윤종성 김성훈 기자] 박근혜 정부에선 고위관료 출신 인사들이 민간기업이나 공공기관장 등으로 자리를 옮긴 사례를 찾기 힘들다. 이남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KT스카이라이프 사장, 최순홍 미래전략수석이 LS산전 상근고문으로 자리를 옮긴 게 전부다. 낙하산 인사·관피아에 대한 여론 악화로 갈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은 때문이다. 많은 인사들이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거나, 내일을 기약하며 고된 공직생활에 지친 심신을 회복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퇴임한 고위 관료들이 관피아 논란을 피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대학이다. 공직생활을 통해 쌓은 현장경험과 이론적 기반을 후학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교수직 자체가 사회적 존경을 받는 자리라는 점에서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선택이다.

지난 7월 퇴임한 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같은 달 24일 국립외교원 석좌교수로 위촉됐다. 퇴임한 지 불과 열흘 만이다. 무보수 명예직인 국립외교원 석좌교수는 관련분야에서 이룬 업적이 크고 국가발전에 기여한 인사들이 위촉된다. 임기는 1년이며, 연장 가능하다. 현 부총리는 퇴임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며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책 제목처럼 냉정과 열정의 균형을 맞춰가며 살겠다”고, 향후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조원동 경제수석은 중앙대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전 수석은 중앙대 서울캠퍼스 경영학부에서 ‘한국경제경영의 이해’라는 수업을 개설했다. 최문기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전직장인 KIST 경영과학부 교수로 복귀했다. 강병규 전 안전행정부 장관은 연세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로 내년부터 강의를 맡을 예정이다. 김충식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도 가천대 교수로 복귀했다. 이영찬 복지부 전 차관은 모교인 경희대에서 교수직을 맡아 강단에 섰다.

박근혜 정부 초대 고용복지수석 비서관을 지낸 최성재 전 수석도 학교로 돌아갔다. 서울대 명예교수인 최 전 수석은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외부 특강과 토론회 참석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근 퇴임한 나승일 전 교육부 차관도 모교인 서울대로 돌아가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차관 재임중 한국체육대 총장에 응모해 논란이 일었던 조현재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지난 7월 한국체대 총장 임용후보자 1순위로 지명됐다. 그러나 한달 넘게 대통령 재가가 떨어지지 않아 계속 대기 중이다. 국립대 총장은 대학 총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최종 후보 2명을 확정해 교육부에 1순위, 2순위로 각각 추천하면 교육부 장관이 인사위원회 자문을 거쳐 임명을 제청하고 대통령이 최종 임명한다.

물의을 일으켜 자리에서 물러났거나 잡음 속에서 퇴임한 인사들은 주변과 연락을 끊은 채 칩거 중인 경우가 많다. 박종길 전 문체부 2차관은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문체부 쪽과도 연락을 끊었다. 박 전 차관은 자신이 운영하던 목동사격장 명의를 이전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공문서 변조 의혹 등으로 작년 9월 취임 6개월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성접대 의혹’ 수렁에서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취임직후 성접대 스캔들에 휘말려 임명 8일 만에 옷을 벗은 김 전 차관은 검찰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하면서 ‘면죄부’를 받았다.

김 전 차관은 올해 7월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변호사 등록을 신청하며 조심스레 대외활동 재개를 모색했으나 서울변회가 등록 철회를 권고, 결국 신청을 철회했다. 서울변회는 통상적으로 수사 대상에 올라 있는 법조인의 경우 변호사 등록을 보류하고 신청 철회를 권고한다. 강요에 의해 김 전 차관에게 성접대를 했다고 주장해온 이모(37·여)씨는 같은 달 김 전 차관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말실수와 태도 논란으로 지난 2월6일 경질됐던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7개월째 자택에 머물고 있다. 틈틈이 가까운 지인들과 만남을 갖고 있으나, 공식적인 대외 활동은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해양수산 분야 민간 협회와 단체들이 윤 전 장관에게 이사장· 고문직 등을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모두 고사했다.

해수부의 한 관계자는 “윤 전 장관이 좋지 않은 모습으로 장관 직을 그만 둔 것에 크게 상심했다”면서 “아직 대외 활동을 재개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거취를 정하지 않은 채 휴식을 취하는 인사들도 상당수다. 수십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퇴임한 관료 출신 장·차관에서 두드러진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등산을 즐기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정현옥 전 고용노동부 차관은 지인들과 종종 모임을 갖는 외엔 드럼연주 등 취미생활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홍 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또한 32년간의 공직생활 동안 지친 심신을 추수르는데 바빠 아직 거취는 고민하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황제라면’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라 마음 고생을 했던 서남수 장관도 자택에서 휴식 중이다. 후임자가 정해지기도 전에 면직처리 돼 그 배경을 두고 관심을 끌었던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퇴임 직후 여행을 떠나 주변 지인들과도 연락이 뜸하다.

건강이 악화된 부인의 병간호를 위해 퇴임을 결정, 화제가 됐던 김동연 국무조정실장 또한 휴식을 취하며 바쁜 공직생활 탓에 소홀했던 가정을 돌보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밖에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박기풍 전 국토해양부 1차관 등도 간혹 외부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여행과 독서, 운동 등으로 소일하며 바쁜 공직생활 동안 지친 심신을 회복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