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포커스]"권리금 내 것"…건물주 약탈 방지 '초읽기'

by박종오 기자
2015.04.25 06:00:00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지난 23일 저녁 퇴근길에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을 찾았습니다. 거기서 취재원을 만나기로 했거든요. 식당을 찾는데 한 곳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가수 리쌍 소유 건물 1층 옆 주차장과 지하 1층에서 서윤수(38)씨가 운영하는 곱창집 ‘우장창창’이었습니다.

서씨를 2013년 5월 인터뷰한 적 있었습니다. 리쌍이 이 상가 건물 1층을 세 든 서씨에게 가게를 비워달라며 명도 소송을 냈을 때였는데요. 당시 서씨가 반발하면서 이른바 ‘갑질’ 논란이 불거졌었죠.

벌써 2년이나 지난 일이라 기억하지 못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이분 그때보다 더 단단해졌구나’ 싶었습니다. 그는 지금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데요. 리쌍 사건 이후 불합리한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던 자기 말을 지금까지 실행에 옮기고 있었던 거죠.

화제가 자연스럽게 상가 권리금 법제화 문제로 넘어갔습니다. 이게 요즘 맘상모의 최대 화두거든요. 마침 다음 날이 국회에서 ‘권리금 보호법’이라고 이름 붙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심의하는 날이기도 했고요. 서씨가 이번 4월 임시국회에서는 법안이 통과될 것 같다고 하길래 전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는데요. 지금 보니 제가 틀린 것 같네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다음 날인 24일 열린 법안심사1소위원회에서 이 법 처리에 속도를 내기로 여야 간 잠정 합의를 했다더라고요. 법사위 여당 간사인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에게도 물어봤는데요. 두 달 전만 해도 올 상반기 내 처리는 어렵지 않겠느냐더니 “이번 임시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하네요.



권리금 보호법의 핵심은 상가 건물 주인이 임대차 계약 기간이 만료된 세입자가 다른 세입자를 구해서 권리금을 회수하려는 걸 방해하면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는 건데요. 건물주분들 오해가 많아서 하는 말입니다만, 건물 주인이 세입자 나갈 때마다 직접 권리금을 줘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단지 세입자가 알아서 받고 나가는 걸 훼방 놓지 말라는 거고요.

예를 들면 이런 경우죠. △건물주가 새 세입자에게 직접 권리금을 받거나△세입자끼리 권리금 주고받는 걸 막는 경우 △임대료를 높여서 계약을 무산시키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새 세입자가 계약 맺기를 거절하고 자신이 직접 영업하겠다고 할 때 등입니다. 만약 이걸 지키지 않아 분쟁이 생기면 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가 권리금 규모를 평가하고요, 그 금액 안에서 손해 배상액을 결정해 합의를 끌어내게 됩니다.

법사위는 다음 달 1일 소위를 다시 열고 심의를 이어간다고 하는데요. 변수가 없지 않겠습니다만, 여야 관계자들 모두 법안 처리 가능성이 높은 것은 맞는다고 했습니다.

이 법안이 워낙 논란이 많기도 했고, 취재해온 기자 입장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한데요. 이를테면 권리금 법제화는 권리금 자체를 보호하자는 게 아니라, 상가 세입자의 영업 보호가 진짜 목적이거든요. 이런 식으로 영세 자영업자들끼리 알아서 자기 권리를 찾으라는 사적 자치 방식을 두고 ‘포퓰리즘’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고요. 임대인 권리를 침해하거나 시장 논리를 거스르지 않는 다른 대안을 찾자는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논의가 이미 이만큼 진전된 마당이니 한 술에 배부르기보다 앞으로 하나씩 보완해 나가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처음에 서씨 이야기를 꺼낸 건 이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소시민인 한 개인의 노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에 회의적이었는데요. 평범한 사람들에게 기존 제도와 질서는 단단한 법이니까요. 그런데 서씨를 보면서 생각을 좀 바꾸게 됐습니다. 비록 그 혼자만의 노력 때문은 아니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