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TMI]희비 엇갈린 KB금융 계열사 두 수장

by유현욱 기자
2020.11.14 07:30:00

같은 날 다른 용무로 금감원 방문한 허인 행장·박정림 사장
'3연임' 확정 지은 허인 vs '라임 사태' 유탄 맞은 박정림

여의도 증권가는 돈 벌기 위한 정보 싸움이 치열한 곳입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쪽지와 지라시가 도는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인 곳입니다. 너무 정보가 많아서 굳이 알고 싶지 않거나 달갑지 않은 내용까지 알게 되는 TMI(Too Much Information)라는 신조어도 있는데요. TMI일 수도 있지만 돈이 될 수도 있는 정보, [여의도 TMI]로 풀어봅니다.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라임 사태에 연루된 증권사 3곳에 대한 첫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리던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감독원 본원 1층 로비. 오후 1시35분쯤 유난히 큰 키가 인상적인 한 남성이 유유히 취재진 사이를 지나 건물 밖으로 향했습니다. 운집해있던 십여 명의 기자들을 되돌아보며 왠지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하던 이 남성이 입은 정장 윗도리 한 깃에는 노르스름한 ‘KB’ 배지가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장신의 주인공은 바로 허인 KB국민은행장입니다. 예상치 못한 허 행장의 등장에 그를 알아보는 취재진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열린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은행분과위원회에 참석한 후 다음 일정을 위해 대기 중이던 차를 타러 나서던 길이었습니다. 지난 5월 자문위가 킥오프한 이후 코로나19로 차일피일 미뤄지던 분과위가 공교롭게 이날 사실상 첫 회의를 가졌는데요.

민간에서는 허 행장과 한 금융지주 회장이 분과위원으로 위촉됐습니다. 국내를 대표하는 ‘리딩뱅크’의 수장인 만큼 금감원 역시 그를 환대했다죠. 은행 담당 부원장, 부원장보, 국·실장들이 총출동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점심을 전후해 회의가 이어진 것을 보면 모르긴 몰라도 오찬을 겸한 편한 자리로 추정됩니다. 마침 허 행장의 연임 소식이 나오던 터라 이를 두고 덕담도 주고받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해 7월21일 경기 김포시 장기동에서 열린 ‘KB 통합 IT센터’ 준공식에 박정림(왼쪽부터) KB증권 사장, 허인 KB국민은행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참석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사진=국민은행)
그런데도 허 행장의 뒷모습이 마냥 즐거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같은 날 밤늦은 시각 KB인들이 다시 금감원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들 한가운데는 박정림 KB증권 사장이 있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징계수위를 논의하는 제재심에 출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앞서 잡힌 신한금융투자, 대신증권을 상대로 한 대심 절차가 지연되면서 박 사장은 별 소득 없이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죠. 그리고는 이달 5일과 10일 두 차례 더 금감원에 불려나온 끝에 ‘문책경고장’을 받아들었습니다. 애초 알려진 원안 ‘직무정지’보다 한 단계 경감된 수준이나, 여전히 3년간 금융회사 임원 선임이 제한되는 중징계였습니다.

지난 2017년 11월과 2019년 1월 각각 KB금융 핵심계열사인 은행과 증권사의 지휘봉을 잡은 두 사람입니다. 나란히 지주 내 디지털혁신부문장(허인), 자본시장부문장(박정림)을 겸직하면서 ‘윤종규(현 KB금융 회장) 키즈’로서 차기 대권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하던 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날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위상, 향후 행보는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주요 시중은행 중 나 홀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비켜간 허 행장은 주가를 높이며 지난 12일 3연임까지 확정 지었습니다. 반면 박 사장은 라임 사태로 인한 유탄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연임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앞으로 남은 증권선물위원회, 금융위원회에서 추가 감경을 노려본다지만, 쉽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우세합니다. 금감원 검사부서 의견보다 두 계단이나 낮은 제재가 내려진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죠. 국내 증권사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 등 불가능할 것 같던 미래를 현실로 바꿔온 ‘여장부’ 박 사장. 하루빨리 명예를 회복하고 금의환향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