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 과징금으로 피해자 배상” 도입 난항

by최훈길 기자
2024.04.18 05:15:00

민주당, 총선 공약으로 ‘페어펀드 도입’ 제시
美처럼 과징금으로 피해자 배상·제보자 보상
투자자 보호+제보 활성화, SEC “제보 55배↑”
금융위 난색 “피해 측정 어렵고 재원 부족”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주가조작 등 증권범죄 과징금을 걷어 피해자 배상금과 내부고발자 보상금으로 지급하는 제도 도입이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공약으로 추진에 나설 예정이나 금융 당국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다.

17일 국회에 따르면 민주당은 내달 30일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한국형 페어펀드(Fair Fund·공정배상기금)를 도입해 피해 투자자 구제’ 공약 내용은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자본시장 불공정·불법행위에 부과한 과징금·벌금 활용해 피해자 손실을 배상하고 내부고발자에게 보상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주가조작을 한 라덕연 호안 투자자문사 대표가 지난해 5월11일 오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오는 4월24일은 라덕연 주가조작 사태 1년이 되는 날이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에서 시행 중인 ‘페어펀드’는 시세조종, 사기적 부정거래,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등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에 과징금 등을 부과한 뒤 걷어 들인 제재금을 피해 투자자들에게 반환해주는 구제 목적의 펀드다.

미국은 사베인스·옥슬리법(SOX법)에 따라 증권범죄 부당이익환수 금액을 불공정거래 피해자를 위한 페어 펀드에 적립하고 있다. 과징금 등 제재금이 늘어날수록 피해자에게 돌아갈 지원금도 늘어나는 구조다. 일종의 피해보상과 비슷하지만, 행정적으로 보면 과징금 전액을 국고로 환수하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제도다.



미국에서는 페어펀드가 투자자 보호 측면뿐만 아니라 내부제보(휘슬블로잉·whistleblowing)를 독려하는 효과도 크다고 보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2023년 SEC 연례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SEC에 접수되는 제보가 이 같은 제도 도입 직전인 2010년 334건에서 지난해 1만8354건으로 55배 늘었다.

헤스터 피어스 SEC 위원은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미국에서는 누가 피해자인지 모를 경우에만 국고로 환수할 뿐, 나머지 대부분은 피해자들에게 돌려준다”며 “제도 시행 이후 좋은 정보가 많이 입수되는 등 굉장히 성공적인 제도가 됐다”고 강조했다. 자본시장연구원도 ‘주요국의 불공정거래 조사체계 및 제재수단 연구’ 연구용역에서 페어펀드에 대해 “투자자 보호 취지에 맞게 활용한다는 점에서 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이에 대해 난색을 보이고 있다. 과징금 체계 개편 관련 내부 심의,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협의까지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위 관계자는 “피해자들의 피해·배상 수준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게 굉장히 어렵고, 재원이 되는 과징금도 충분히 적립돼 있어야 한다”며 “과징금 체계를 개편하는 것인 만큼 상당한 스터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일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