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유쾌한 정숙씨'와 '갑질 사모님'

by이슬기 기자
2017.08.03 06:00:00

[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두 명의 ‘여사(女史)님’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유쾌한 정숙씨’와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대장)의 부인 ‘갑질 사모님’이다.

같은 ‘여사’지만 행보는 극과 극,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청와대로 이사하던 날인 지난 5월 13일 오전, 김정숙 여사는 사저 앞을 찾은 민원인에게 라면을 대접하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기자단에 손수 만든 수박 화채를 대접하는가 하면, 수해 현장을 찾아 복구 지원에 구슬땀을 흘렸다. 수석보좌관회의에는 커피 대신 수해지역의 ‘낙과(落果)’로 만든 화채를 올리도록 했다. 탈권위 차원을 넘어 배려와 공감을 담은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다.



다른 ‘여사님’은 ‘갑(甲)질’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여사님’은 공관병들에게 집안 청소 등 허드렛일을 시키면서 폭언을 일삼았고 전자 팔찌를 차게 한 뒤 수시로 호출해 ‘잡일’을 시켰다. 자신의 아들이 휴가를 나올 때면 바비큐 파티를 준비시키기도 했다. 공관병 역시 남의 집 귀한 자식이자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대한의 아들이건만, 이 ‘여사님’에겐 그저 자신의 시중을 드는 ‘하인’에 불과했다. 갑질을 넘어 인격권을 침해한 만행에 가깝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공관병 제도를 폐지하고 민간 인력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이는 여단장급 이상 지휘관들이 둘 수 있도록 한 공관병의 역할은 남기되, 인력을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지휘관의 사생활 편의를 위한 지원을 국민의 세금인 예산을 들여 계속하겠다면 또다른 논란은 불가피하다. 공적 업무가 아닌 사적 차원의 역할이 필수 불가결하다면 자비로 쓰는 게 이치에 맞다.

새 정부가 적폐 청산을 국정과제 1호로 내세운 만큼, 군대에서도 새 시대에 걸맞은 변화가 필요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공관병의 폐지가 군대 내 적폐청산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지긋지긋한 ‘갑질 사모님’이 아니라 이제는 ‘유쾌한 대장 부인’도 한 번쯤 만나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