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MLB 뜨거운 이물질 투구 논란...비겁한 속임수? 암묵적 관행?

by이석무 기자
2021.06.21 11:00:10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이 기사는 이데일리 홈페이지에서 하루 먼저 볼 수 있는 이뉴스플러스 기사입니다.

최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최대 화두는 투수들의 이물질 사용 논란이다.

MLB 사무국은 최근 30개 구단과 메이저리그, 마이너리그 심판들에게 ‘부정투구 관련 제재’에 관한 공문을 보내고 22일(이하 한국시간) 본격적인 부정투구 검사를 할 것임을 예고했다.

심판들이 경기 중 선발투수는 최소 2번, 불펜투수는 최소 1번 이물질 사용 여부를 점검한다. 점검은 이닝 교대 시에 이뤄진다. 이물질 사용이 의심될 때는 경기 중 어느 때나 점검할 수 있다. 조사 결과 이물질이 적발된 투수는 그 자리에서 퇴장당한다. 적발된 선수들은 10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주심은 투수뿐만 아니라 야수의 글러브도 확인할 방침이다. 야수들이 글러브에 이물질을 발랐다가 이를 공에 묻혀서 투수에게 전달하는 상황을 가정해서다.

본격적인 부정투구 조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효과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MLB 사무국이 부정투구 단속 의지를 드러낸 이후 절반이 넘는 투수들의 회전수가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매체 ‘더 스코어’가 최근 조사한 결과 MLB 사무국 발표 이후 메이저리그 전체 투수 가운데 3분의 2 정도는 공의 회전수가 감소했다. 눈에 띄게 회전수가 현격히 감소한 투수도 3분의 1이 넘는다. 부정투구 논란으로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투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투수들이 던지는 공의 회전수가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평균 타율은 다소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 문승용 기자)
이물질 사용은 빅리그의 암묵적이면서 공공연한 비밀

사실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들이 이물질을 사용해 공을 던지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게릿 콜(뉴욕 양키스), 트레버 바워(LA다저스), 맥스 슈어저(워싱턴 내셔널스), 저스틴 벌랜더(휴스턴 애스트로스) 등 빅리그에서 내로라하는 투수들도 그동안 부정투구 의혹을 받아왔다.

투수들은 손과 공의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목덜미나 글러브 안쪽, 모자 챙 안쪽, 벨트 안쪽, 유니폼 내의 등에 이물질을 묻혀 투구에 활용했다. 손에 침을 바르고 공을 던지는 것은 그나마 애교 수준이다. 진흙, 바셀린, 파라핀, 선크림 등 이물질 종류도 다양했다. 최근에는 타자들이 배트를 잡을 때 미끄러지지 말라고 장갑이나 배트에 뿌리는 파인타르가 많이 사용됐다.

부정투구 정황은 심심치 않게 발견됐다. 투수의 손이 뭔가가 묻어 있다거나 글러브, 모자 등 각종 용품에 일부 변색된 부분이 나온다면 부정투구 이물질이 확실했다. LA다저스 투수 트레버 바워가 지난해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리그 투수 중 약 70%가 이물질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해 논란에 불을 질렀다.

올해 초에는 LA에인절스 클럽하우스 매니저였던 라이언 하킨스가 자신이 직접 송진과 크림 혼합물을 섞어 이물질을 만들어 선수들에 제공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그는 콜, 벌랜더 등 고객의 실명까지 공개했다.

부정투구의 주범으로 지목된 양키스 에이스 콜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물질을 사용한 적이 있느냐’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나는 안 해…”(I don‘t)까지만 말한 뒤 한참 지나서야 “솔직하게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콜은 “나이 많은 선수들이 지금의 세대에게 전해준 관례나 관행이 있다”며 “그 중에는 일부 선을 넘는 것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한 대화는 필요하다”고 말해 간접적으로 사용을 인정했다.

MLB 사무국은 왜 뒤늦게 칼을 꺼내들었나

투수가 투구 시 이물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적용되지 않았다. MLB 사무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규제하지 않았다. 경기에 나서는 팀이나 선수들도 알고도 쉬쉬했다. 상대 선수뿐만 아니라 우리 팀 선수들도 같은 속임수를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칫 공개적으로 문제 삼았다가 동료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 일이 2019년 5월 9일에 있었다. 당시 시애틀 매리너스의 일본인 투수 기쿠치 유세이는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공을 던지기 전 모자 챙 안쪽을 유독 자주 만졌다. 거기에는 파인타르로 추정되는 흑갈색 물질이 묻어 있었다. 현지 중계진도 키쿠치의 손과 모자를 클로즈업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정작 양키스 타자들은 “파인타르가 기쿠치의 투구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문제 삼지 않았다. 양키스 코칭스태프 역시 키쿠치의 행동에 전혀 항의하지 않았다. 일종의 암묵적인 관례로 서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올 시즌 MLB 사무국은 뒤늦게 칼을 빼 들었다. 최근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구위가 급격히 좋아지면서 타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다. 극심한 투고타저 현상이 야구의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투수들의 위력을 떨어뜨리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고 이물질 사용 제재가 수면 위로 올라갔다.

선수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에이스 타일러 글래스나우는 최근 오른쪽 팔꿈차 인대가 부분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그는 “MLB 사무국의 이물질 단속 때문에 부상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글래스나우는 “이전까지는 자외선 차단제를 공에 바르고 던졌다”며 “이물질 단속을 피하기 위해 패스트볼과 커브 그립을 바꿔 그전보다 더 깊게 공을 잡고 던졌는데 이후 팔꿈치가 아프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조치는 비시즌부터 적용해야 한다”며 “나는 이미 80이닝이나 던졌는데 갑자기 아무것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는가”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시카고 컵스의 일본인 에이스 다르빗슈 유는 부정투구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봤다. 그는 “투수들이 점성을 높이는 이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메이저리그 공인구가 미끄러워서 벌어진 일이다”면서 “그동안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알면서도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다르빗슈의 말대로 메이저리그 공인구는 한국이나 일본의 공인구보다 표면이 훨씬 매끄럽다. 공인구 제작시 미끄럼 방지를 위한 첨가물을 넣지 않기 때문이다. 공이 덜 미끄러지도록 경기 전 ‘러빙 머드’라는 공인받은 진흙을 발라 보관하지만 그래도 투수들이 느끼기에 손에 딱 잡히지 않는다. 양현종, 김하성 등 올해 메이저리그 무대에 도전한 한국인 선수들도 처음에 공인구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메이저리그 역사와 함께 해온 이물질 부정투구

이물질을 사용한 부정투구는 야구와 역사를 같이 한다. 초창기에는 공에 침을 묻히는 ‘스핏볼’이 보편화 됐다. 심지어 스핏볼 전문투수라는 용어도 나왔다. MLB 사무국은 스핏볼을 1920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공에 직간접적으로 침을 묻히는 투수는 종종 볼 수 있었다.

침 외에 땀, 바셀린, 진흙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예 사포, 송곳, 끌, 손톱 등으로 공에 직접 흠집을 내 마찰력을 높이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

1961년 사이영상을 받은 뉴욕 양키스 투수 화이티 포드는 부정투구를 활용했던 대표적인 선수다. 그는 전담포수인 엘스틴 하워드가 정강이 보호대에 긁어 흠집을 낸 공으로 타자를 상대했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 돈 서턴은 아예 면도날 조각을 글러브 안에 붙여놓고 공 표면에 흠집을 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부정투구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2년 6월 10일 당시 롯데 투수 이용훈은 KIA와의 경기에서 공을 치아로 깨무는 듯한 행동을 취해 부정투구 논란을 자초했다. 그는 “기도하는 것과 똑같은 나만의 버릇이라 마운드에 올라서면 딱 한 번 그렇게 한다”고 해명했지만 파문은 계속 확산됐다.

결국 이용훈은 그 다음 경기였던 6월 13일 두산전에서 주심으로부터 ‘공을 입에 물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고 이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국내 투수들은 메이저리그만큼 이물질을 즐겨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일단 공인구 자체가 메이저리그 보다 훨씬 덜 미끄럽기때문에 이물질 사용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한 프로야구 투수는 “오히려 불필요하게 손이 끈적거리면 공을 제구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광현은 “타자가 파울을 쳐낸 뒤 방망이에 끈적이는 것이 묻은 것을 본적이 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싫었다”며 “나는 로진만 많이 묻히는 편이고 다른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메이저리그 공인구를 쓰는 국제대회에 나갈 때는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이 코리안 메이저리거들로부터 이런 비법(?)을 전수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