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가 답이다…경기침체·불평등·독점 해결에는"

by오현주 기자
2019.10.16 00:25:00

자본주의·민주주의 재설계 위한 제안
모든 재산 경매하고 투표는 저축하고
빈곤한 상상력 낡은 고정관념 넘어야
▲래디컬 마켓|에릭 포즈너, 글렌 웨일|472쪽|부키

저자 에릭 포즈너와 글렌 웨일은 자본주의·민주주의의 재설계를 위해 제안한 ‘래디컬 마켓’의 정수로 ‘경매’를 꼽았다. 세상 모든 재산을 경매에 부쳐 시세 이상을 지불하면 누구나 임대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소유권 아닌 사용권에 방점을 찍은 실험이다(이미지=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또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늘 똑같은 주장으로 늘 하는 싸움박질. 그래도 양쪽 소리를 한 번만 더 들어볼 참이다. 오늘은 뭔가 대책이 나올 것 같으니까.

주제는 불평등. 먼저 왼쪽에서 나왔다. “정부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빈곤층에게 주택·의료·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다음은 오른쪽이다. “정부는 국영기업 민영화, 재산권 보호 강화, 세금 감면, 규제 완화를 실시해야 한다!” 왼쪽에서 ‘불평등은 절대 저절로 해결이 안 되니 인위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오른쪽에선 ‘그런 게 어딨냐’고 한다. 경제가 잘 돌아가면 불평등은 자연스럽게 해소가 되는 거라고.

어쨌든 지겨울 법도 하다. 이들의 다툼이 하루이틀 묵은 게 아니니까. 짧게 잡아도 ‘개혁’을 외치기 시작한 50여년을 함께한다. 좀 먹고살 만하면 나아지나? 천만에. 개발도상국에서 나오는 얘기가 선진국에서 나오는 그 얘기다. 다를 게 없단 소리다. 속사정은 더 심각하다. 뾰족한 해결책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니까.

그러니 이제 무슨 방법이 있겠나. 좀 세게 나갈 수밖에. 양 갈래를 헤치고 어디서도 해내지 못한 개혁을 하자고 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뿌리까지 캐내 시장·사회구조의 골격과 내용을 완전 ‘리셋’하는 것. 이름 하여 ‘래디컬 마켓’! 풀어내면 ‘급진적인 시장’이다. 너무 과격하지 않느냐고? 모르는 소리. “따져보자. 19세기 자유주의자는 급진주의자였다. 사물의 근원을 따진다는 점에서도, 사회제도의 근본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급진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알맹이는 다 빼버리고 껍질뿐인 자유주의자만 남지 않았느냐.”

이 주장은 금융구제·파산법 등이 전문인 법학자 에릭 포즈너, 마이크로소프트연구소 수석연구원인 경제학자 글렌 웨일, 두 사람에게서 나왔다.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에 뿌리박힌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확실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게 뼈대다. 경기침체나 불경기는 물론이고 불평등·독점 등의 경제문제, 항상 불안한 정세나 대중인기에만 영합하는 포퓰리즘 등의 정치문제를 화끈하게 뜯어고칠 수는 없는가 하는.

여기에는 ‘이제껏 당신들이 한 게 뭐냐’는 신랄한 비난이 깔려 있다. 늘 상황은 핵폭탄급인데 별 효과도 없는 재탕·삼탕의 방책뿐이지 않았느냐는 거다. 부자증세가 그렇고 소득재분배가 그렇고 민영화와 규제 완화가 그렇다고 했다.

시작부터 단순치 않다. 간판으로 건 캐치프레이즈 역시 단순치 않다. “사적 소유는 독점의 다른 이름”이란다(사실 이 말은 19세기 중후반의 영국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에게서 나왔다). 과연 뭐가 나올지, 제대로 한 방이 나와줄 건지. 맞다. 책은 그 한 방을 찾는 본 게임이다.

△“시세 이상 지불하면 누구나 임대·사용”



저자들이 내건 래디컬 마켓은 포괄적인 제도적 합의를 바탕에 깐다. 시장을 통한 자원배분이란 근본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는 형태 말이다. 전제가 있단다. ‘최소한 중단기’ 시장이어야 하고, 진짜 경쟁도 필요하단다. 독점화해버려 존재하지도 않는 시장에서 버둥거리는 것 말고. 한마디로 구성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시장일 것. 이 같은 시장이라면 불평등을 완화하고 번영을 도모하며 이념적·사회적 균열까지 치유할 수 있단다.

그런데 말이다. 래디컬 마켓의 정수라는 게 특이하다. ‘경매’란다. 입찰경쟁을 벌여 가장 절실한 사람이 대상을 가져가는 형식. 그런데 그 대상이 ‘전 재산’이라면? “세상 모든 재산을 ‘경매’에 부쳐 시세 이상을 지불하면 누구나 임대하고 사용할 수 있다.” 왜 하필 경매인가. 모든 것이 경매의 대상이라면 사업체니 집이니 토지를 가진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아예 소유 개념은 없다. 잠시 사용할 뿐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입찰자가 나타날 때까지. 경매에서 생긴 수익은 공공재 투자나 저소득층 복지재원으로 돌리고.

경매로 불평등을 원천봉쇄했다면 독점을 막는 건 ‘공동 소유 자기평가세’가 할 수 있단다. 각자의 재산을 스스로 평가하고 평가액을 공개한 뒤 그 금액에 누구나 살 수 있게 한다. 세금은 가격에 따라 매긴다. 더 높은 가격을 부를수록 더 높은 세금을 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폐단을 개선하자는 ‘급진적 발상’도 있다. 이른바 정치영역의 래디컬 마켓인 셈인데. 바로 ‘투표를 저축’하는 거다. 철석같이 믿고 있는 ‘1인1표제’를 뒤집는다. 자신이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안에 행사하지 않은 투표권을 모아뒀다가 정말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안에 표를 몰아주는 방식이니까.

덤 같은 제안도 있다. 디지털경제에 데이터를 공급하는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받게 하는 거다. 쉽게 말해 이거다. 모든 사용자를 디지털노동자로 두고 있는 (페이스북·구글·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디지털회사에 사용자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데이터 혹은 그 노동에 합당한 비용을 지급하는 것.

△실행가능성 관건…소규모 단위의 실험부터

책의 강점은 발상을 뒤집은 거다. “문제는 사상의 빈곤이 아니라 사상 자체에 있다”는 도입부의 프레임을 끝까지 지켜내면서 말이다. 덕분에 현상만 나열하고 뻔한 대안으로 흐지부지한 결말을 내온 다른 접근들과는 확실하게 구별된다. 저자들의 제안에는 그들이 고백했듯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했으니까. 상상력뿐인가. 역대급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조지 스티글러 등을 죄다 불러놓고 정치인인 쑨원과 아돌프 히틀러까지 소환했으니.

관건은 실행가능성일 터. ‘래디컬’한 정책은 실행은커녕 그저 들이대는 데도 격한 저항을 부를 수 있다. 자본주의·민주주의에 고인 물이 졸졸 빠져나간다 쳐도 종국에 상대해야 하는 건 감성·변덕으로 중무장한 ‘사람’이라고. 그러니 소규모 단위의 실험들로 매듭을 풀어야 한단다. 큰 수레바퀴를 굴려 자국부터 내자고 덤빌 일이 아니란 얘기다.

혹여 제대로 작동하지 않더라도 ‘급진적 정신’ 하나는 알리지 않겠느냐고 했다. 당신들이 매번 똑같은 소리를 낸 건 빈곤한 상상력과 낡은 고정관념 때문이고, 그것을 서로의 좌·우 탓인 양 떠넘겼기 때문이고, 그 핑계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