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핵무장론' 효과?…北 "9월말 대화하자"·트럼프 "만남은 좋은 것"

by이준기 기자
2019.09.10 05:23:40

최선희, 美동부시간 오전에 전격 담화 "새 계산법 들고 나오라"
국무부 일단 신중…트럼프 "만남은 언제나 좋은 것" 긍정 평가
실질적인 성과 도출 가능성에 의문…美정치권 '회의론'도 부담

사진=연합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북한이 9일(현지시간) “우리는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장소에서 미국 측과 마주 앉아 우리가 논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를 전격 제안한 것이다. 지난 6일 미국 측 실무협상 책임자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공개적으로 ‘한국·일본의 핵무장론’을 언급하며 협상 복귀를 강하게 압박한 지 사흘만이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미 대통령도 “만남은 좋은 것”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다만, 미국의 대북(對北) 정책에 별다른 변화가 감지되지 않은 가운데 북한이 “새 계산법”을 들고 나오라고 요구, 향후 테이블에 앉더라도 구체적인 성과가 도출될지 불투명하다는 관측도 만만찮다.

로이터통신 등 미 주요 언론에 따르면 최선희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나는 미국 측이 조·미(북·미) 쌍방의 이해관계에 다 같이 부응하며 우리에게 접수 가능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며 이처럼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면서 “만일 미국 측이 어렵게 열리게 되는 조·미 실무협상에서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 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의 태도변화는 비건 대표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잇따른 압박 발언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 비건 대표는 “한국이나 일본, 여타 아시아국가에서 그들의 핵 능력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며 한·일을 비롯한 아시아국가의 핵무장 검토 가능성을 언급해 파장을 낳았었다. 키신저 전 장관의 발언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나왔지만, 협상 실패 땐 도미노식 핵무장이 필연적임을 부각, 북한을 강하게 압박한 것으로 해석됐다. 북한의 혈맹으로, 한·일의 핵무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중국도 함께 겨냥한 것으로도 읽혔다. 중국을 움직여 북한을 협상테이블에 앉히려는 전략인 셈이었다.



더 나아가 비건 대표의 직속상관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8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협상 테이블에 복귀하지 않거나 미사일 실험을 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실망할 것”며 김 위원장을 직접 겨냥한 강경 메시지를 발신한 바 있다.

최 부상의 담화는 미 동부시간 시간 오전에 전격 발표됐다. 미국 측의 즉각적인 ‘화답’을 노린 시간대다. 일단 미 국무부는 “아직 발표할 만남은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노스캐롤라이나주(州) 선거유세장으로 떠나기 직전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만남은 언제나 좋은 것”이라며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볼 것”이라고 다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따라서 현재로선 교착국면을 이어온 실무협상이 다시 본궤도에 오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사진=AFP
문제는 양측이 얼굴을 마주한다고 해도 구체적인 성과 도출이 가능하냐는 데 있다. 북한이 ‘새 계산법’을 다시 요구하고 나섰으나 미국은 ‘선(先) 비핵화·후(後) 제재완화’라는 큰 틀의 대북정책에서 별다른 변화를 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월 말 ‘노딜’(No deal)로 귀결된 제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그 어떤 대북정책의 변화 신호는 감지되지 않았다. 날로 커지는 미 정치권의 ‘비핵화 회의론’도 트럼프 행정부가 넘어야 할 산이다. 만약 북한의 별다른 비핵화 조치 없이, 덜컥 그 어떤 ‘약속’이라도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만만치 않은 후폭풍에 시달릴 수 있다.

한편, 실무협상이 재개된다면 비건 대표는 그의 카운터파트너로 낙점된 것으로 알려진 김명길 전 베트남 대사와 ‘담판’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장소는 미국은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국가를 선호하고 있으나 북한의 요구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게 미 언론들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판문점을 넘어 평양에서 재개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