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재전쟁]①IT 선진국 韓..AI 후진국 `잃어버린 20년`

by양희동 기자
2017.08.11 05:15:00

1997년 체스 AI '딥 블루' 충격에도 인재육성 소홀
전국 관련학과 '0'곳..알파고 이후 뒤늦게 관심
기업들, AI 인력 가뭄에 연봉 2억 인력 해외 영입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지난 1997년 5월 11일, IBM왓슨연구소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딥 블루’가 러시아 출신 세계 체스 챔피언인 카스파로프를 꺾었다. 세계는 놀랐고 딥 블루 개발을 진두지휘했던 쉬펑슝(許峯雄·당시 38세) 박사는 그해 9월 한국을 방문해 AI 관련 강의를 펼쳤다. 국내 가전업체들은 인공지능 세탁기 등 관련 제품을 앞다퉈 선보였다. AI 열풍이 한동안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17년 8월 현재 우리나라에는 AI 전공학과가 있는 대학교가 단 한 곳도 없다.

10일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학부 과정인 AI전공 학과는 내년 3월, 인제대학교(경남 김해 소재)에 첫 신설될 예정이다. 또 대학원에 AI전공 과정이 있는 곳은 단국대 정보·지식재산대학원이 유일하다. 딥 블루가 인간을 꺾은 뒤 강산이 두 번 변할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나라는 AI 인재를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양성할 전공 학과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AI 분야에서 ‘잃어버린 20년’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인재 육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눈에 띄는 국내 AI 기업이나 스타트업도 찾아볼 수 없다.

반면 미국과 유럽은 딥 블루 이전인 1980년대 1차 AI붐 때부터 대학과 기업 등에서 지속적인 관련 연구와 기술 개발을 진행해 왔다. 이를 통해 AI 지식과 경험을 쌓은 인재들은 전 세계 기업과 연구기관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높은 몸값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해 3월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세기의 바둑 대결로 촉발된 세 번째 AI붐을 맞은 이후, 뒤늦게 인재 영입에 나서면서 인력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 SK텔레콤(017670), KT(030200), 네이버(035420) 등 국내 주요 IT·전자업체들은 AI 인재를 찾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다락같이 치솟은 몸값에 기존 국내 연구 인력의 3~4배에 달하는 연봉을 줘야하는 상황이다. 미국 상위 20위 내 공과대학 AI전공자의 초봉은 학부 졸업생도 20만 달러(2억 2700만원) 이상이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와 네이버 등은 미국의 AI 음성인식 스타트업인 ‘비브랩스’와 프랑스 ‘제록스리서치센터’를 통째로 인수하는 방식으로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 또 은행·증권사 금융업계도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상품을 앞다퉈 출시하면서 IT·전자는 물론 금융까지 AI 인재의 활동 영역은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업계에선 미국과 유럽 등에 비해 한참 뒤쳐진 AI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선, 정부 차원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LG전자 CTO(Chief Technology Officer) 부문 인공지능연구소 소속으로 AI분야에서 23년 간 일해온 전혜정 연구위원(상무급)은 “1990년대 2차 AI붐이 일어났을 때 국내에선 정말 많은 관련 회사가 생겨나고 연구도 이뤄졌지만 그 명맥을 지금까지 유지하지 못했다”며 “AI분야는 높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멀리 가는 것이 더 중요하고, 구글 등 해외 기업이 가져가고 있는 빅데이터 등 AI 자원도 국가 차원에서 보호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IBM왓슨연구소가 개발한 AI인 ‘딥 블루’가 지난 1997년 5월, 세계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와의 경기를 펼치고 있는 모습. 카스파로프가 힘겨운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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