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뇌관' 가계부채…통계만 많고 해법은 없다(종합)

by김정남 기자
2017.04.24 05:23:24

각 기관 가계부채 통계들, 부채총량 위주 일색
"다양한 통계 통해 입체적으로 실체 파악 가능"
'미시 통계' 필요성 목소리…혼란 가중 지적도

어느 시민이 한 상호저축은행의 대출창구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가계부채 통계가 우후죽순(雨後竹筍) 쏟아지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통계청 등 각 기관들이 각자의 기준에 맞춘 통계를 내놓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부상하는 만큼 이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다양한 통계는 이슈의 실체를 다양한 각도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증가세는 20년 묵은 난제 중 난제다.

다만 가계부채 문제가 풀릴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남는다. 통계 자체가 총량 위주인 만큼 위기인지 아닌지 여전히 알쏭달쏭한 탓이다. 일각에서는 각자 차이가 나는 수치의, 그것도 수백조원 수천조원 단위의 통계이다보니 혼란이 가중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23일 정부와 한은 등에 따르면 한은은 분기별 가계신용 외에 매월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분기별 자금순환, 반기별 금융안정보고서 등을 통해 가계부채 통계를 공개하고 있다.

대표 격은 가계신용이다. ‘가계부채 1300조 시대’가 여기서 나왔다. 지난해 4분기까지 전체 잔액은 1344조3000억원. 예금은행 외에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신탁·우체국예금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과 연기금 보험사 증권사 카드사 등 모든 금융기관의 가계대출이 잡힌다.

이와 연계된 게 자금순환 통계다. 가계와 민간비영리단체(종교단체, 대학병원, 노동조합 등)가 가진 빚이 나오는 자료다. 가계신용에 소규모 개인사업자, 민간비영리단체 등을 더한 대출 총액이 공개된다. 지난해 말 현재 잔액은 1565조8000억원. 한은은 은행권 가계대출 통계도 내놓는다. 가계가 은행에서 매월 얼마나 대출 받았는지, 잔액은 얼마인지 나온다. 지난달 증가액은 2조9000억원, 잔액은 713조9000억원이다.

한은은 또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자체 구축한 ‘가계부채DB’도 일부 공개하고 있다. 예컨대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신용자(신용 7~10등급) 또는 저소득자(하위 30%)인 취약차주의 대출 규모와 비중 등이 나온다.



통계청 역시 매년 가계금융복지조사(가금복)를 내놓고 있다. 전국의 2만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하는 식인데, △소득 분위별 부채 △가구주 연령대별 부채 △가구주 종사상 지위별 부채 등이 나와있다. 가금복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현재 가구의 평균부채는 6655만원으로 전년 대비 6.4% 증가했다.

최근에는 금감원도 가계대출 통계를 따로 내놓겠다고 나섰다. 한은의 부채 통계와 기준은 약간 다르다. 올해 1~2월 수치만 비교해도 금감원의 가계대출 속보치(10조1000억원)와 한은의 가계대출 집계치(8조1000억원)는 2조원가량 차이가 났다.

최근 10여년 한국은행 집계 가계신용 추이다. 가계부채 증가세는 최근 갑자기 나온 이슈가 아니다. 가계부채는 2000년대 들어 매년 증가했고, 이에 대한 경고음은 계속됐다. 지난해 말 현재 잔액은 1344조3000억원 규모다. 단위=조원. 출처=한국은행
여러 가계부채 통계들이 일반에 공개되는 자체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한 당국자는 “한 가지 사안을 두고도 여러 종류의 통계들이 나와줘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신속한 정책을 위한 금감원의 통계와 거시경제적 접근을 위한 한은의 통계는 그 목적이 달라 상호 보완적인 역할도 가능하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가계부채 통계가 더 세세하게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국민들을 속속 다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현재 나온 통계 정도로도 정책을 해야 하고, 또 가능하다는 의미로 보인다. 박 교수는 “이미 가계부채가 1000조원이 넘은 시대인데, (각 기관간 통계에서) 5조원 10조원 정도의 차이는 대세에 지장이 없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 ‘미시 통계’의 필요성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일리는 있다. 쏟아지는 통계들은 주로 총량 위주다. 그 규모도 많게는 1000조원 이상이다. 그 수치 자체가 얼마나 큰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은 데다, 어느 정도의 총량을 넘으면 위기인지에 대한 기준도 명확하지 않은 ‘깜깜이’라는 얘기다. 대출자들의 소득과 자산 수준을 통해 상환능력을 파악할 수 있지만, 이는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그나마 있는 가금복은 설문조사식(式)이어서 정확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 시내 한 사립대의 경제학 교수는 “가계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는 느낌은 있다”면서도 “잘 대비하면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위기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위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실제 가계부채 경고음은 2000년대 이후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정책당국은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통계가 쏟아지다보니 국민은 오히려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금융권 한 인사는 “각 기관은 가계부채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데이터를 구축하는데 더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