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시간 절반 '뚝'…이동형 진단서비스까지 혁신기술 쏟아져

by김호준 기자
2021.06.07 06:00:00

[규제혁신이 만드는 미래]①제주 전기차 충전 규제자유특구
전기사업법·자동차관리법 규제 풀자 신기술 쏟아져
이동형 전기차 진단, 충전기 공유 등 실증사업 활발
전 세계 전기차 충전 시장, 25조원 규모 확대 전망
"전기차 시대, 충전 시장 선점 박차"

‘규제 완화’는 모든 국민이 공감하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그러나 정작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 완화 정책은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이데일리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역별로 ‘덩어리 규제’를 풀어 지역산업 발전과 혁신성장을 촉진하는 ‘규제자유특구’를 직접 둘러보고, ‘규제혁신이 만드는 미래’라는 주제로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ESS(에너지저장장치·사진 맨 오른쪽 기계)를 병합한 전기차 충전기가 전기차량을 실제로 충전하고 있다. ESS 병합 충전기를 활용하면 충전 속도는 두 배가량 늘어난다. (사진=김호준 기자)
[제주=이데일리 김호준 기자]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4일 제주도 제주시 첨단로 일대. ‘전기차 충전 서비스 규제자유특구’인 이곳에서는 국내 최초 이동식 전기차 충전기 실증사업이 한창이었다. 전기차 충전 솔루션 기업 ‘에바’가 개발한 이동식 충전기는 40KWH 용량으로 언제 어디서나 두세 대 이상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다. 그간 전기차는 충전기를 직접 찾아다녀야 했지만, 에바의 이동식 충전기를 사용하면 공간 제약이 사라지는 셈이다.

특구에서는 이동형 충전기처럼 별도 인증 기준이 없는 제품도 실증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전기사업법 등 규제를 완화해 지금까지 300회가 넘는 충전 실적을 거뒀다. 신동혁 에바 이사는 “이동식 충전 서비스를 상용화한 곳은 미국의 프리와이어(FreeWire)를 제외하면 대부분 초기 단계”라며 “전기차 시대를 맞아 이동식 충전기로 새로운 시장을 선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혁 에바 이사가 이동식 전기차 충전기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호준 기자)
‘전기차 1번지’ 제주도가 전기차 충전 인프라 고도화 전진기지로 거듭난다. 6일 중기부에 따르면 제주도는 지난 2019년 11월 ‘전기차 충전 서비스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 특구에서는 그간 전기차 충전 기술개발의 걸림돌이었던 전기사업법, 자동차관리법 등 규제를 완화했다. 현재 특구에서는 14개 기업이 △충전시간 단축 △이동형 충전 서비스 △충전 인프라 공유 플랫폼 △데이터 기반 전기차 특화진단 등 4개 실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제주는 전기차 충전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화하는 데 최적지로 꼽힌다. 지난해 기준 제주도 내 등록 전기차는 약 2만대로, 전국 전기차의 약 18%를 차지한다. 그만큼 전기차 충전 수요가 많아 인프라 고도화를 실험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인근에서는 전기차 충전 전문기업 ‘시그넷이브이’가 50KW급 전기차 충전기에 ESS(에너지저장장치)를 병합한 새 충전기 성능 점검을 하고 있었다. 기존 전기사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이처럼 성능을 개선한 충전기는 별도 인증 기준이 없어 사업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제주 특구에서는 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실제로 ESS 병합 충전기를 사용하자 코나나 니로 등 전기차를 80% 정도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0분에서 20분 내외로 대폭 줄어들었다. 김영준 시그넷이브이 개발팀 과장은 “기존 50KW 충전기에 ESS를 병합하면 충전 속도는 물론이고 전력 부족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기부와 제주도는 현재 두 개인 ESS 병합 충전기를 8개로 확대 설치해 안전성을 점검, 새로운 충전기 인증 기준 요건을 마련할 계획이다.

강성종 휴렘 대표가 ‘충전 데이터 기반 전기차 특화진단 서비스 실증’을 시연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호준 기자)
‘중고 전기차’ 풀리는데…진단·가격 산정 서비스는?



휴렘, 전기차평가연구소 등 기업들은 ‘충전 데이터 기반 특화 진단 서비스’ 사업을 수행 중이다. 이동형 점검차량에서 전기차 성능·상태를 점검하고, 중고 전기차의 적정 가치까지 산정하는 모델을 개발한다. 기존 자동차관리법에서는 자동차 성능·상태 점검을 특정 장소에서만 허용해 이 같은 서비스가 불가능했지만, 규제를 풀어 이동형 점검차량에서도 서비스가 가능토록 했다.

전기차 점검을 원하는 차주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서비스를 신청하면 누구나 무료로 점검을 받을 수 있다. 5톤(t) 트럭에 달린 리프트에 전기차를 올려 이동식 점검 서비스를 받는 시간은 30분 내외. 점검이 끝나자 배터리 성능 상태와 전력 누수 여부, 모터 상태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한 진단 보고서를 받을 수 있었다. 배터리 건강상태를 뜻하는 ‘SOH’를 포함해 누적 충전량, 방전량 등을 분석하자 종합등급 ‘S’가 나왔다. 강성종 휴렘 대표는 “누적 거리나 충전량, 배터리 상태 등 데이터를 모아 신뢰할 수 전기차 진단 서비스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개인이 소유한 전기차 충전기를 대여해 사용하는 모습. 제주 특구에서는 개인 소유 전기차 충전기를 앱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다. (사진=김호준 기자)
이와 함께, 제주 특구에서는 개인용 전기차 충전기 공유도 가능하다. 그간 전기차 충전기를 남에게 빌려주면 ‘전기를 파는 행위’로 간주 돼 규제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충전기 소유자가 공유를 원하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누구나 빌려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다. 운전자는 편하게 충전기를 빌려 쓸 수 있어서 좋고, 충전기 소유자는 적정 비용을 받아 서로 이득이다.

현재 90여 개 전기차 충전기가 공유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 해당 서비스에 가입한 이들도 벌써 500명을 넘어섰다. 실증사업에 참여한 ‘차지인’ 이구환 부사장은 “충전기를 무한정으로 늘릴 수가 없다. 나눠 쓰면 더욱 효율적인 충전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어 좋다”며 “충전기 업계 ‘에어비앤비’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도 ‘세계 최고’ 도전하는 제주

전기차 충전기 글로벌 시장은 올해 약 33억달러(3조7000억원) 규모에서 2030년 220억달러(25조원)로 연평균 24%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주도와 중기부가 이번 실증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쳐 전기차 충전 관련 규제 완화까지 이어진다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 전기차 충전 시장에서도 한 발짝 앞서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독일 폭스바겐, 중국 차지티티, 미국 프리와이어 등 기업들이 앞다퉈 이동식·고속 전기차 충전기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기술과 서비스를 내놓은 곳은 흔치 않다.

제주도는 특구에서 개발한 기술과 제품을 내년부터 전국으로 확대 적용하고, 해외 수출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오는 2027년까지 최소 1500만달러(약 168억원) 이상 수출액 달성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테크노파크 관계자는 “이번 특구 사업을 통해 전기차 충전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들의 기술개발을 지원해 세계 시장 선점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며 “이를 통해 ‘탄소 없는 섬 제주’(Carbon Free Island Jeju) 실현에도 한 발짝 다가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