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진 작가 "소외된 사람들의 결핍…촘촘히 채워주고 싶었죠"
by이윤정 기자
2020.02.26 00:30:00
소설집 '당신의 외진 곳' 출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외진곳' 등 수록
"소설은 결핍 채워주는 과정"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나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손에 들고 고무신 변기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오늘의 가난에 대해 두 번째 생각하는 중이었다. 공동 화장실은 엉덩이를 걸치고 사용해야 하는 변기보다 고무신 형태의 구식 변기가 위생적이었다. 단점은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가 저린다는 것이었다.”(‘외진 곳’ 중)
2019년 ‘이효석문학상’ 수상 작가인 장은진(44) 작가가 세 번째 소설집 ‘당신의 외진 곳’(민음사)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소설집 ‘빈집을 두드리다’ 이후 8년 만에 묶어내는 신작 소설집이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젊은이, 마을 벽에 일기를 쓰는 여자아이, 중고품을 사고파는 가게를 운영 중인 여자 등 외진 곳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주로 등장한다.
장 작가는 200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와 2004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에 소설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키친 실험실’ ‘빈집을 두드리다’와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 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았다’ 등을 펴냈다.
25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장 작가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는 게 보람된 일인 것 같다”며 “그들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기에 이물감 없이 다가온다”고 말했다.
| 장은진 작가는 “‘울어본다’에서 ‘모든 사람들이 밤에 운다면 슬픔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나온다”며 “힘들고 지칠 때는 참지 말고 마음껏 울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사진=민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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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집에는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외진 곳’을 비롯해 ‘울어 본다’ ‘이불’ ‘수리수리 마수리’ ‘망상의 아파트’ ‘안나의 일기’ ‘이층집’ ‘점거’ 등 총 8편의 단편을 실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평범한 현재에 좌절하면서도 소망을 지닌 채 살아간다. 지금 몸을 뉘인 이 방의 넓이가 조금만 더 넓기를, 온도가 조금만 더 따뜻하기를 바라며 ‘더 나은 삶’을 꿈꾼다.
“소설이란 결국 인물의 결핍을 찾아서 그걸 채워주는 과정이다. 약자나 겉도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결핍이 많을 것이고, 그 결핍을 채우다 보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에 저절로 관심이 간다. 겉보기에 부족할 게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들여다보면 어딘가 결핍이 있다. 그걸 찾아서 촘촘히 채우다 보면 근사한 이야기가 만들어질 거라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외진 곳’의 자매는 사기를 당해 원래 살던 원룸의 반 토막만 한 ‘네모집’의 작은 방으로 이사를 온다. 취업을 했음에도 반지하 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불’을 읽다 보면 영화 ‘기생충’의 주인공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장 작가는 “인생은 오래 살았다고 해도 늘 어렵고 힘든 일의 연속”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기생충’은 인간의 계급구조를 공간으로 잘 형상화한 작품이다. 냄새나는 반지하 방이 제일 밑바닥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아래 햇빛조차 볼 수 없는 캄캄한 지하가 드러난 순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계급구조 속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고, 그 구조 안에서는 너 나 없이 모두 기생충이다. 결국 기생충은 공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곧 소설의 소재가 됐다. 깊은 새벽 냉장고에 등을 기대고 냉장고가 없던 시절의 어머니와 자신을 생각하는 ‘울어 본다’의 여자와 중고용품을 사고파는 ‘수리수리 마수리’의 여사장 이야기에서도 냉장고가 등장한다. 장 작가는 “어렸을 때 다른 집에 비해 냉장고가 조금 늦게 생긴 편이었다”며 “친구 집에서 냉장고에 얼린 얼음을 처음 먹어 봤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했다.
“냉장고는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물건이 되어서 그에 얽힌 이야기 한두 개 정도는 다들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일상에서 흔하게 보고 사용하는 물건에 관심이 많다. 그것들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유심히 들여다보면 일상성을 벗어나는 관념이나 특징 같은 게 떠오른다. 완전히 새로운 걸 생각할 수 없다면 기존에 있던 것들을 낯설게 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소재에 관심이 간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고통을 간직하고 있다가 소설로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장 작가는 “고통을 잘 표현하는 능력은 작가에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며 “삶은 시궁창 같은 거라고 보는데, 그걸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