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메타버스’ 18년차 베테랑은 수어로 어떻게 풀어낼까?

by이상원 기자
2022.01.19 06:00:00

[인터뷰] 18년차 베테랑 수어통역사 한현심
"더 정확하고 쉽게 설명할지 매 순간 연구"
"국민 모두가 수어 배워 함께 소통하는 사회 꿈 꿔"

[이데일리 이상원 기자] “블록체인·메타버스·스마트 도시·플랫폼 노동자는 수어(手語)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18년차 `베테랑` 통역사인 한현심 수어 통역사에게도 대선 후보 정책 소개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공약 발표라는 민감성 탓에 `보안 유지`를 이유로 즉흥으로 해야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새로운 용어를 설명해야 할 때는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배경을 설명하느라 식은땀을 흘리는 때도 많았다. 국어 문법 체계와 달라 일대일로 단어가 등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현심 수어(手語) 통역사가 18일 오전 국회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일반적인 행사나 포럼의 경우 대부분 사전에 자료를 받는다. 뉴스 원고도 적어도 한 시간 전에는 제공해 최소한의 준비가 가능하다. 그러나 정책과 공약은 사전 자료가 제공되지 않는 만큼 순발력이 더 요구된다. 제한된 시간 안에 쏟아지는 정보의 양을 모두 전달할 수 없다. 가장 적합한 표현을 찾아 요약해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이 최대 과제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재생 에너지`를 설명할 때도 특히 고민이 많았다. 추상적인 표현은 손가락으로 단어를 나타내는 지화(指話)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최대한 지양하며 단어를 명확하게 풀이하려 노력했다. 이 후보가 강조하고자 하는 `태양광`과 `풍력`을 이용해 이를 재생 에너지로 설명했다.

스마트 도시·플랫폼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경제·환경·노동 관련 정책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단순 나열로는 농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 `스마트 도시`는 `기술이 앞선 도시`라는 수어로 통역한다. 플랫폼 노동자도, 이들을 대표하는 `배달 라이더`를 표현한 뒤 이와 비슷한 `여러 사람들`을 붙여 설명하는 식이다.

한 통역사는 “특정 단어를 택했을 때 농인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지 늘 고민이 된다”며 “먼저 공간 설정을 하거나 배경을 설명한다. 공간을 설정한 뒤 어떤 상황인지를 전달하는 식으로 훨씬 이해하기 쉽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30분 남짓한 발표 시간을 위해 그는 해당 분야를 며칠 전부터 공부한다. 정확한 뜻을, 조금 더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담겼다.

농인을 위해 일하는 만큼, 국민이 농인과 함께 소통하는 날을 꿈꾼다.

그는 “수어 통역사가 바라보는 농인을 더 바라봐주길 바란다”며 “여러분의 이웃에 농인이 함께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국민 모두가 수어를 할 수 있어 농인들과 일상생활에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훨씬 다양한 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작은 바람도 건넸다.

한현심 수어(手語) 통역사가 18일 오전 국회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다음은 한현심 수어 통역사와의 일문일답.

-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현장을 함께 수행한다.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이 후보가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그다음은 농인이 그 메시지를 정확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요점을 파악해 전달하는 것이다. 수어와 국어 문법체계가 다르기에 단어 하나하나 일대일로 등치 되지 않는다. 단어를 그대로 전달하면 다른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순간적인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요약해서 전달한다.

- 통역할 때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든가.

△수어의 표현은 하나인 경우가 있고 국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국어에는 ‘살피다’ ‘조사하다’ ‘검사하다’ 등 여러 표현이 존재하지만 수어에는 ‘관리하다’만 있다. 이 단어를 택했을 때 농인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지 늘 고민이 된다. 이를 해결하고자 공간설정을 하거나 배경을 설명한다. 공간을 그려준 후 어떤 상황인지 그려줌으로써 훨씬 이해를 하기 쉽도록 돕는다.



-정책·공약 발표 시 어려운 단어도 있을 것 같은데.

△국민의 입장에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정책은 들어도 어렵다. 정책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정보의 양을 쏟아낸다. 흔히 사람들은 ‘단어만 나열해주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한다. 농인도 교육 수준이 다 다르기에 단어만 주었을 때 의미 파악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정책 발표 시 정확하게 의미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지화(指話)를 쓴다.

- 신조어 같은 경우는 어떻게 표현하는지.

△특히 요즘은 신개념 언어의 정의가 어렵다. 블록체인·비트코인·메타버스 이런 것들을 말하는데 정말 빠른 속도로 말을 한다. 한번은 ‘메타’를 지화로 버스를 수어를 쓴 적이 있었는데, 그럼 온전히 ‘메타버스’라는 의미가 전달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럴 경우 다른 수어통역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 가장 적절한 표현을 찾는다.

△플랫폼 노동자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도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발화자의 의도를 묻고 또 가장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선택해 지금은 플랫폼 노동자를 대표하는 ‘배달 라이더’를 수어로 표현하고 그 뒤에 여러 사람들이란 수어 표현을 붙여서 통역한다. 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에너지라는 글자를 지화화했다가 이 후보가 태양광과 풍력이라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나서, 태양과 바람을 이용한 힘으로 표현한다.

△또 정책은 영어가 많다. ‘스마트 도시’는 똑똑한 도시가 아니지 않나. 세종시와 관련한 브리핑일 경우 굉장히 자주 쓰이는 단어다. 이를 ‘기술이 앞선 도시’로 표현한다. 영어로 풀었을 때 이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확 와 닿지 않는다. 이해하기 쉽도록 정책을 설명하려 노력한다.

- 통역을 하며 기억에 남는 브리핑이 있는지.

△지난 3일 이 후보가 KBS ‘뉴스9’에 나왔을 때다. 보통 정책을 설명할 때 왜 필요한지 배경 설명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 후보가 저출산 정책을 설명할 때 기성세대는 고성장 시대에 기회가 많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책에 돈을 쏟아부어도 아이를 낳을 희망이 없는 상황에 대해 미리 배경을 설명해줬다. 선명하게 배경 설명을 제시했기에 통역사의 입장에서 명확하게 전할 수 있었다.

- 미리 메시지를 전달받는 경우보다 즉흥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지.

△공약은 매우 민감하다. 미리 주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미리 받으면 어떻게 통역을 하겠다는 것을 그려보곤 한다.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순발력도 좋아야 하고 순간순간 언어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책을 읽을 때에도 농인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늘 생각한다. 즉흥으로 할 때는 수어도 말처럼 단어 선택이 정말 중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는 표현을 고려해서 해야 한다.

- 수어 통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편견이 있는지.

△수어 통역사가 바라보는 농인을 더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수어 통역사는 보이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 농인의 언어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여러분의 이웃에 농인이 함께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면 좋겠다. 꼭 수어 통역사가 드러나지 않아도 된다.

-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아직도 봉사자라고 보는 분들이 많다. 수어통역을 위에 정말 안 보이는 곳에서 공부하는 양이 정말 많다. 30분 정책 브리핑을 갈 때에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공부를 한다. 그러나 자원봉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있다. 열심히 준비하고 전문성을 발휘하는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 앞으로의 목표는.

△전문 수어통역이 아닌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기초반을 운영해보고 싶다. 아이들한테 수어를 가르쳐줬는데 농인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가 소통하는 모습을 봤다. 국민 모두가 수어를 할 수 있어 농인과 일상생활에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훨씬 다양한 대화가 이뤄지고 농인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현심 수어(手語) 통역사가 18일 오전 국회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