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술25]‘골칫거리’ 폐플라스틱, 다시 쓰는 길 열렸다

by박순엽 기자
2021.10.26 06:30:00

[화학적재활용]①'쓰고 버리는 삶'이 남긴 위기…열분해로 극복
혼합·오염 플라스틱도 재활용 가능…탄소중립 시대 필수 기술
시장 규모 지난해 90만t→2030년 410만t으로 4배 성장 전망

우리는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지나 플라스틱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현 인류를 플라스틱 없이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호모 플라스티쿠스’(Homo plasticus)라고 부르기도 하죠. 플라스틱 폐기물에 따른 폐해가 많다고는 하나 합성섬유부터 비닐, 스티로폼에 이르는 플라스틱을 우리 삶에서 한순간에 떼어놓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 때문에 인류는 버려지는 플라스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이 주는 편리성을 유지하면서 그 폐기물로 자연과 인류가 위협받지 않는 방법은 재활용뿐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더 많은 종류의 폐플라스틱을 다시 쓸 수 있게끔 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인류의 초점은 맞춰지고 있습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1955년 8월 미국 시사 매거진 ‘라이프’는 온 가족이 환하게 웃으며 일회용 접시와 포크를 헹가래 치듯 던지는 사진을 잡지에 실었습니다. 여기엔 ‘Throwaway Living’(그냥 쓰고 버리는 삶)이라는 제목과 ‘일회용품이 집안 일을 줄인다’는 부제가 함께 달렸습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일회용품을 사용하면 집안 허드렛일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글이었죠.

그러나 그로부터 65여 년이 지난 현재, 그냥 쓰고 버리는 삶이 남긴 막대한 플라스틱 폐기물은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이 1950년 200만t에서 2015년 4억여t으로 200배 이상 늘어나는 동안 플라스틱을 자연에 그냥 버려왔기 때문이죠. 이렇게 땅에 매립되거나 내팽개쳐진 폐플라스틱은 다양한 방식으로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습니다.

2021년 서울에서 열린 ‘P4G 녹색미래 정상회의’에 참석한 롤프 파옛 바젤·로테르담·스톡홀름협약 사무총장은 “현재 생산소비 유형을 유지한다면 2050년엔 바닷속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을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죠. 한때 썩지 않고 녹슬지 않는다는 이유로 ‘20세기 최고 발명품’이라고 불렸던 플라스틱은 아이러니하게 썩지 않아 ‘전 세계의 골칫거리’가 됐습니다.

그럼에도 워낙 여러 형태로 쓰이는 곳이 많다 보니 플라스틱의 완전한 퇴출은 쉽지 않습니다. 마땅히 대체할만한 소재도 없죠. 인류가 ‘재활용’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1988년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과정이 처음 가동된 이후 분리수거 방식 개선 등을 통해 재활용률을 높이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전 세계 1950~2015년 플라스틱 생산·소비 및 처리 현황 (사진=Science Advances·삼성증권)
기존 재활용 보완하는 ‘화학적 재활용’…화학업계 잇따른 관심

그러나 지금도 폐플라스틱 절반 이상은 소각되거나 버려지고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조지아 주립대학 공동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1950~2015년 배출된 폐플라스틱 58억t 중 재활용된 플라스틱은 5억t에 그쳤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9% 정도죠. 2020년을 기준으로 하면 재활용률이 23%까지 늘어나지만, 그래도 77%의 폐플라스틱은 여전히 재활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플라스틱 재활용의 대명사를 차지하고 있는 ‘기계적 재활용’(Mechanical recycling)의 특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기계적 재활용은 폐플라스틱을 잘게 분쇄한 뒤 세척·선별·혼합 등 비교적 단순한 기계적 처리 공정을 거쳐 재생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방식입니다. 지금도 재활용되는 폐플라스틱의 90% 이상은 이 방식을 통해 다시 쓰입니다.

그러나 기계적 재활용을 통해 재생되는 플라스틱은 기존 플라스틱과 비교하면 품질이 낮고, 재활용을 거듭할수록 더욱 질이 나빠져 재활용할 수 있는 횟수도 제한적이란 한계가 있습니다. 또 화학 구조 변화없이 물리적인 형태만 바꾸는 방식이어서 여러 화학제품이 혼합되거나 오염된 플라스틱엔 적용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죠.



이 때문에 화학업계는 ‘화학적 재활용’(Chemical recycling) 기술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화학적 재활용은 수백~수만개의 단량체(monomer)가 모여 구성된 고분자 형태 플라스틱을 화학적 반응을 통해 기존 원료였던 단량체 형태로 되돌리는 방식을 일컫는데요. 쉽게 말해 레고 블록으로 만든 작품을 다시 분해한다는 개념입니다.

화학적 재활용은 기계적 재활용이 가진 문제점을 보완합니다. 폐비닐 등 기존에 재활용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플라스틱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고, 기계적 재활용이 불가능할 정도의 플라스틱에도 다시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죠. 재생 플라스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국내외 글로벌 화학업체들도 화학적 재활용 분야에 발을 내밀고 있습니다.

화학적 재활용의 흐름 (사진=한화솔루션)
해중합·열분해에 관심…화학적 재활용으로 ‘시장 재편’ 가능성

현재 화학적 재활용은 재활용 과정을 거치면서 나오는 물질에 따라서 크게 △정제(Purification) △해중합(Depolymerization) △화학 원료화(Feedstock recycling)로 나뉩니다. 화학 원료화엔 열분해·가스화·열수처리 등이 있죠. 화학업계에선 그 중 폐기물을 대폭 줄일 수 있는 해중합과 열분해 기술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먼저 해중합은 말 그대로 ‘중합(重合)을 해체한다’는 의미로, 기존 폐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잘게 쪼개 플라스틱 기초 재료를 만드는 기술입니다. 플라스틱을 이루는 큰 분자 덩어리의 중합을 해체해 단량체로 되돌리는 것이죠. 이렇게 해체된 원료 물질로는 플라스틱을 다시 만들 수 있죠.

해중합 과정을 거친 플라스틱은 처음 만들어진 플라스틱과 유사한 물성을 보인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재활용 공정에 사용할 수 있는 폐플라스틱 종류가 제한적이라는 점은 기계적 재활용과 비슷합니다. 원료가 되는 폐플라스틱이 단일 성분이어야 하는 탓에 해중합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제품은 페트(PET), 폴리우레탄(PU) 등으로 한정됩니다.

열분해는 현재 화학적 재활용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식으로, 폐플라스틱을 산소가 없는 반응기에 넣고 반응기 밖에서 열을 가해 분해하는 기술입니다. 산소가 없다 보니 플라스틱에 불이 붙진 않죠. 대신 폐플라스틱이 열을 흡수하면서 가스·오일·잔류물 등으로 분해되는데, 여기서 나오는 오일은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로 다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열분해 기술은 기계적 재활용이나 해중합 기술과 달리 혼합 플라스틱을 대상으로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해중합으로 처리할 수 없었던 폴리에틸렌(PE)이나 폴리프로필렌(PP)도 재활용할 수 있죠. 소각이 아니어서 미세먼지나 다이옥신과 같은 유해물질이 발생하지 않고, 폐수나 폐기물 등 재활용 과정에서의 오염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 재활용 과정 (사진=미국석유화학단체)
화학적 재활용은 기술 개발이 어렵고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에서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에서의 비중은 아직 그리 크지 않습니다. 다만, 업계에선 최근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기조에 따라 재생 플라스틱 수요가 증가하면서 품질이나 재활용 횟수에 제약이 없는 화학적 재활용 위주로 시장이 변화할 것이란 예측이 나옵니다.

삼성증권 ESG연구소는 2020년 90만t에 그친 전 세계 화학적 재활용 시장 규모가 오는 2030년 410만t으로 4배 이상 성장할 것이란 예상치를 내놨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에서의 점유율도 6.6%에서 20.6%로 커질 전망입니다.

단위=만t, 자료=삼성증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