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행동주의 태동]지배구조 취약하고 배당성향 낮은 韓…타깃 많아

by최정희 기자
2019.02.13 05:10:20

한국 기업 지배구조 수준
아시아 12개국 중 겨우 9위
배당성향도 20% 안팎 그쳐
난립 땐 기업가치 훼손 우려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해야"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최정희 이슬기 기자] 기관투자가들이 주주제안이나 주주서한 등을 통해 주주 활동을 강화하면서 기업들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이에 주가도 반응하고 있다. 광주신세계는 연초 들어 주가가 13.6% 가량 올랐고 맥쿼리인프라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다만 행동주의 펀드를 바라보는 시선은 갈린다. 투자도 안 하고 쌓아두는 현금으로 떨어지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방어하기 위해선 자산 매각 등 어떤 제안도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이는 과도한 경영 개입이란 우려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형 행동주의를 표방한 공모, 사모펀드는 3100억원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난달에만 800억원대의 자금이 조성된 데다 운용사가 계획한 자금만 2500억원에 달해 한국형 행동주의 펀드 규모는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펀드가 조성된 지 1년이 안 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수익률 평가는 어려우나 맥쿼리 인프라의 운용보수 인하로 주주 행동주의가 관철된 플랫폼파트너스의 액티브인프라 펀드는 작년 3월 설정후 최근까지(1월 22일 현재) 24%대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한진칼(180640), 남양유업(003920) 등을 상대로 주주 활동을 본격화하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데다 취약한 지배구조와 낮은 배당성향에 주주 활동이 개입할 만한 투자처도 많단 평가가 나온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 수준은 아시아태평양 12개국 중 9위에 불과했다. 배당성향 또한 20% 안팎에 불과해 중국(35%, 2017년)보다도 낮다.



이에 따라 경영진의 자질 문제로 지배구조가 안 좋거나 주주환원 정책 등이 미진한 기업들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한방직(001070), 한국가구(004590), 조선선재(120030) 등 10개사는 2년 연속 주주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진 주주제안 안건은 부결되는 게 다반사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12월 결산 상장기업들의 작년 3월 정기주주총회를 분석한 결과 27건의 주주 제안 안건 중 주총을 통과한 안건은 고작 2건에 불과했다. 윤종엽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현재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봉건시대, 조선시대와 다를 바 없다”며 “현금을 많이 쌓아놓고 방치하는 상장사들이 많은데 배당이든 자사주 매입이든 인수합병(M&A)이든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이는 것은 소액주주 뿐 아니라 대주주도 혜택을 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행동주의가 기업 가치와 수익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안착하기 위해선 대주주에만 유리한 상법 등이 개정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KCGI가 한진칼에 감사 선임을 제안할 것에 대비해 한진칼은 단기차입금을 늘려 자산 2조원을 만들었고 감사위원회(자산 2조원 이상 의무 설치)를 설치하는 식으로 방어막을 치면 주주 활동이 들어갈 틈새가 부족하단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에는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뿐 아니라 모든 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돼 회사측안이 관철될 가능성이 높다. 감사위원 선출 자체가 부결될 가능성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회사측이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아트라스BX(023890)의 경우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주총에서 두 번이나 부결된 감사위원(회사측 제안)이 법원 명령으로 현재 임시 감사위원으로 임명돼 있다. 이에 따라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와 그렇지 않은 이사를 분리 선출하고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는 대주주 등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단 의견이 나온다.

대주주의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대주주나 경영진이 주주 자본비용에 대해선 인식이 없다”며 “주주 행동주의를 통해 대주주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주 자본비용에 대한 인식이 없다 보니 남양유업처럼 대리인인 경영진이 대주주에게 혜택을 줄까봐 배당을 못 늘리겠다고 주장하는 사례도 생긴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주주 행동주의가 난립할 경우 기업 가치가 외려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우용 상장회사협의회 전무는 “자산 매각, 사업 정리, 구조조정 등 고도의 경영판단이 필요한 사항까지 행동주의 펀드가 간섭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펀드는 기본적으로 수익추구와 투자 지분의 엑시트(Exit)가 목적이지 경영인, 창업주처럼 기업의 지속가능성 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본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포이즌필(Poison pill, 경영권 침해 시도시 기존 주주에게 주식 싸게 매입할 권리 부여)이나 차등의결권(일부 주식에 많은 수의 의결권 부여)과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을 도입하는 등 공정한 환경이 갖춰져야 행동주의 펀드 공격도 좀 더 건전해지고 투자자들도 보호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