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났습니다]①"탄핵 위대한 민주주의 성과…개헌 손놓아 아쉽다"

by안대용 기자
2020.03.10 01:11:00

국회 소추위원 대리인단 황정근 소백 대표변호사
국정공백 최소화 위해 신속한 재판 진행에 주안점
"국회 탄핵 의결 전 법사위 조사 거치도록 법 개정을"
"탄핵 이후 대통령 권한 분산 논의 없던 것 아쉬워"

[이데일리 안대용 기자] “지금부터 2016헌나1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한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17년 3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탄핵심판 사건 결정문 낭독을 시작하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오전 11시21분쯤 이 권한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주문을 선고했다. 8대 0, 재판관 전원 일치 결정이었다. 2016년 12월9일 탄핵소추안이 헌재에 접수된 뒤 석 달간 숨가쁘게 진행된 탄핵심판 사건은 헌정 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파면으로 마무리됐다.

황정근 법무법인 소백 대표변호사. (사진=김태형 기자)


국회 소추위원 측 대리인단을 이끌었던 황정근(59·사법연수원 15기) 법무법인 소백 대표변호사는 9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도 법 아래 있다는 교훈을 우리 사회가 얻게 됐다”며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면 탄핵되고 파면된다는 걸 알리면서 역사의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했다. 다만 “탄핵 이후 권력구조 개헌이 이뤄졌어야 하는데 정치권이 손을 놓은 게 아쉽다”고 말했다.

불행한 역사가 반복돼서는 안 되지만, 만일을 대비해 국회법과 헌재법을 보완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황 변호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조사 절차가 전제되지 않고 본회의에서 바로 의결하는 게 적절하진 않다”면서 “고위 공직자의 파면 여부를 가리는 게 탄핵심판인데 법사위에서 사실 관계를 확정하지 않은 채 검찰 발표로 의결하는 건 사실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사전에 논쟁을 피하기 위해 피청구인 측이 부동의한 증거 채택 여부도 법 또는 적어도 헌재 규칙에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론만 17차례. 대리인단 총괄팀장을 맡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탄핵심판 사건을 지켜본 황 변호사를 서울 종로구 적선동에 있는 소백 사무실에서 만나 탄핵 사건의 뒷얘기와 3년을 맞은 소회를 들어봤다.

다음은 황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권성동 위원장으로부터 요청을 받았다.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고 각계 의견을 두루 들으면서 적임자를 물색했다고 들었다. 정치적 민감성이나 국가의 비용 문제를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대형 로펌에서 하긴 어렵고, 개인 변호사가 컨트롤 하기엔 사건이 거대했다. 법관 출신이면서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며 팀 플레이를 해 본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재판이 끝날 때까지 실무를 총괄하게 됐지만, 원래는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을 지내신 원로 법조인 가운데 총괄팀장 위의 대리인단장을 모시려는 계획이 있었다.

△가장 주안점을 뒀던 부분은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판 중에는 대통령의 직무집행권한이 정지되기 때문에 국정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피청구인 측 대리인단이 무더기로 증인을 신청한다든지 온갖 지연책을 쓸 때 그걸 하나 하나 막아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좀 받았다. 상대방의 소송 지연 전략에 대응해야 하는데 예측이 쉽지 았았다. 변론이 마무리 될 때 쯤에는 탄핵심판 주심이었던 강일원 재판관 기피 신청까지 하지 않았나. 대통령 탄핵을 논하는 헌재 재판정에서 피청구인 측 대리인단이 막말을 한 건 경악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지막 변론 때는 “어떤 변론을 해도 좋은데 다 기록으로 남으니 표현은 가려가면서 하자”고 했다.

△2번의 탄핵심판에서 국회 법사위의 사실관계 조사 절차가 없어도 탄핵소추가 적법하다고 봐 확립된 판례가 되긴 했지만, 법사위 조사 절차가 전제되지 않고 본회의에서 바로 의결하는 게 적절하진 않다고 본다. 국회법 제130조 1항에 `본회의는 의결로 법사위에 회부해 조사하게 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조사해야 한다`로 개정돼야 한다. 물론 공소장에 검찰이 조사한 결론이 담겨 있긴 하지만 탄핵심판은 고위 공직자의 파면 여부를 가리는 재판이지 않나. 법사위에서 사실관계를 확정한 다음 해야지 검찰에서 발표했다고 의결하는 건 사실 위험하다.

탄핵심판이 시작된 뒤 관련 학술대회가 있었는데 송기춘 전북대 로스쿨 교수가 이 조항을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만일 피청구인 측에서 헌재에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면 재판이 상당히 지연될 수밖에 없었는데 우려했던 주장은 나오지 않았다. 피청구인 측에서 수사기록상 관련자들의 진술에 동의하지 않았을 때 증거로 채택할 수 있는지 여부도 헌재법 또는 헌재 규칙에서 정해야 한다. 탄핵심판이 형사절차를 준용한다고 볼 경우 조서를 부동의 했을 때 증인들을 다 불러야 한다는 입장과 공문서니 부를 필요 없다는 입장으로 나뉘는데 헌재는 중간 입장을 취했다. 이건 결정문에도 나오지 않을 뿐더러 객관적 합리적 기준이라고 볼 수도 없다. 훗날 탄핵 사건이 있으면 형사 절차가 다 선행이 될 텐데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계속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탄핵소추 의결로 직무집행이 정지되는 부분도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직무집행 정지로 국정공백이 발생하잖나. 빨리 진행한다고 해도 석 달씩이나 걸렸는데 탄핵 소추 후 다음 대통령을 뽑을 때까지 5개월의 공백이 생겼다.

△탄핵심판에서 안창호 재판관이 보충의견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했었다. 지난 1987년 헌법 개정 후 30년 이상 지났고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탄핵 이후에 권력구조 개헌이 이뤄졌어야 하는데 정치권이 손을 놓은 게 아쉽다. 대통령의 엄청난 권한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한다. 탄핵심판은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해결이 된, 위대한 민주주의의 성과다. 한 사람을 파면하고 그친 게 아니라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면 탄핵되고 파면된다는 걸 알리면서 역사의 경종을 울렸다. 최후 변론문에도 `이 결정이 역사의 기록과 국민의 기억 속에 남을 텐데 그건 결국 이런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어떤 고위 공직자, 정치인이든 이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