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최대 69시간제’ 사실상 폐기…尹대통령 “청년 의견부터 들어라”

by최정훈 기자
2023.03.22 06:00:00

윤석열 대통령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 무리” 재차 강조
연장근로시간 유연화 통한 주 최대 69시간제 실효성 사라져
“60시간 이하로 재설계 시 현행 탄력근로제 보다 못 해”
“MZ세대 노동개혁 의견수렴”…노동의 미래 포럼도 발족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재차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힘에 따라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은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주 60시간 상한캡을 씌우는 것만으로도 현재 운용 중인 탄력근로제보다 근로시간이 적어 제도 개편의 의미는 크게 상실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 출생)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여론조사와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 등을 시행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도 내렸다. 고용부는 청년 세대의 의견을 듣기 위한 창구 역할을 할 ‘노동의 미래 포럼’을 발족했다. 전문가 입김이 크게 작용했던 노동개혁이 일대 전환점을 맞을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 무리”…다시 강조한 尹대통령

윤 대통령은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생각한다”며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의 후퇴라는 의견도 있지만, 주당 근로시간의 상한을 정해 놓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노동 약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지난 6일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이나 ‘분기’, ‘반기’, ‘연’ 단위로 다양하게 선택하고, 11시간 연속휴식권 보장 시 1주 최대 69시간, 휴식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최대 64시간을 근무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일이 많을 때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몰아서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푹 쉴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이지만, 과로와 장시간 노동을 조장할 수 있다며, 비판이 잇따랐다.

논란이 가열되자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지난 16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예고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윤 대통령은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보완을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대통령실은 주 60시간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날 윤 대통령이 직접 “1주 최대 근로시간을 60시간 이하로 제한하라”고 언급하면서 사실상 정책의 방향을 제시했다.

실효성 없어진 주 최대 69시간제…“탄력근로제보다 못해”

윤 대통령이 ‘주 최대 60시간’이라는 상한캡을 씌우면서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 다양화를 통해 기존의 ‘주 52시간제’(법정근로시간 40시간+연장근로시간 12시간)를 유연화하려던 고용부의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은 사실상 의미를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도 기업들이 활용 가능한 탄력근로제보다 근로시간이 적기 때문이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탄력근로제는 법정근로시간(40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제도다. 특정 주의 법정근로시간을 52시간까지 늘리는 대신 다른 주의 법정근로시간을 줄여 최장 6개월간 주당 평균 법정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맞추는 게 골자다. 여기에 연장근로시간 12시간을 더하면 주 최대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탄력근로제를 도입하기 위해선 노사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 다양화를 도입하기 위해선 근로자대표의 서면합의가 필요하고, 연장근로시 개별 근로자의 동의도 필요하다. 그만큼 활용도가 떨어진다. 주 최대 근로시간이 60시간 이하로 제도가 설계되면 현행 탄력근로제보다 후퇴하는 셈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정부안을 폐기하고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이날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이정식 고용부 장관에게 “윤 대통령의 발언 취지는 추가연장근로 등 다 포함해서 총근로시간을 60시간 넘지 않도록 하라는 지침”이라며 “현재 개편안은 폐기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윤 대통령은 늘 생명, 건강, 안전을 챙기라고 하는데, 주60시간은 현실적으로 계속 일하게 되면 무리 아니냐는 말씀인 것 같다”며 “지금은 입법예고 기간으로 규제 심사와 법제 심사를 거치고 국무회의로 가는 과정에서 보완하는 단계인데, 그 부분에 대한 대안을 충분히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청년 40명 구성된 노동개혁 포럼 발족…“폭넓게 의견수렴”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는 그 제도의 설계에 있어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수집해야 한다”면서 “고용부 등 관련 부처에 세밀한 여론조사,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라”고 언급했다.

이에 고용부는 청년 세대들의 노동개혁 관련 의견을 청취하는 창구로 ‘노동의 미래 포럼’을 발족했다. 포럼에는 대학생, 사무직·현장직 재직자, 플랫폼기업 대표, 중소기업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전문직, 청년활동가, 각 부처 청년보좌역 등 다양한 직업과 경력의 청년 약 40명이 참여했다. 포럼 위원들은 노동개혁 논의체에 참여하는 전문가들과의 연석회의 등을 통해 여론 수렴, 정책 홍보, 개혁과제에 대한 제언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장관은 이날 발대식에서 “노동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해관계자와의 충분한 소통과 폭넓은 의견수렴이 중요하다”며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의 입법예고 기간 동안 청년을 비롯한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제도 개편 취지가 현장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보완방안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