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프리즘]아바타도 '법 울타리'가 필요해

by 기자
2022.07.19 06:15:00

[박주희 법무법인 제이 대표변호사]전 세계 유튜브 통계 분석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유튜버 중 슈퍼챗을 가장 많이 받은 유튜버는 ‘우루하 루시아’다. 그는 슈퍼챗으로만 2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얻었다. 2, 3위에는 키류 코코, 유키하나 라미가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버튜버’ 또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라고 불리는 가상의 캐릭터들이다. 캐릭터 속에서 연기하는 사람은 단순히 정해진 대사를 읊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캐릭터의 성격과 정체성에 맞게 실시간으로 구독자와 대화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도 한다. 에니메이션 속에 갇혀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구독자와 소통하는 ‘살아 있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버튜버에 열광하고 있다. 지난 해 전 세계 슈퍼챗 상위 10위 중 9명은 모두 버튜버였고 우리나라도 최근 성우 서유리가 연기하는 ‘로나로나땅’이라는 버튜버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사람들이 가상의 캐릭터에 열광하는 것처럼 메타버스 즉, 가상공간은 이제 더 이상 현실의 삶과 동떨어진 곳이 아니다. 가상공간의 삶에 갖는 애착도나 심리적 몰입은 현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상공간에서의 나의 아바타는 곧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그곳에서 아바타가 겪는 일들은 현실에서 겪는 일처럼 개인의 심신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가상공간에서의 활동이 늘어남에 따라 현실의 삶만큼 복잡 다양한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가상공간에서 아바타에 대한 성추행 행위가 급증하고 있으며, 한 버튜버에 대한 명예훼손과 모욕성 글이 온라인 게시판에 지속적으로 게시되기도 했다. 그런데 현행법으로 과연 이를 처리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대법원은 현행법상 아이디나 캐릭터 자체는 법의 보호를 받는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에서 해당 아이디나 캐릭터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되지 않는 이상 명예훼손이나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우리나라 형법은 ‘실체적인 사람의 명예’만을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버튜버를 연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는 버튜버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 행위가 있다 해도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성범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음란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현행법으로 처벌 가능하지만 아바타에 대한 인격권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아바타에 대한 성추행은 처벌할 근거가 없다.

문제는 가상공간에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느끼는 충격이나 당혹감은 현실에서 범죄를 당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유명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서 사용하는 ‘진명황의 집행검’이라는 아이템은 현금 2억원에 거래가 될 정도로 게임 세계에서는 막강한 능력을 부릴 수 있는 아이템인데, 몇 년 전 60대 여성이 게임사를 상대로 해당 아이템이 소멸됐다며 복구해달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혹자는 만져보지도 못하는 게임 아이템을 거액을 주고 거래하고 소송까지 제기하는 세태를 보면서 손가락질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가상공간에서 휘두를 수 있는 권력과 힘이 현실의 개인에게 차지하는 의미와 가치가 크다는 방증이라 할 것이다.

이처럼 가상공간에 대한 삶의 밀착도가 높아진 만큼 이제는 여기서 벌어지는 분쟁들을 어떻게 법적으로 해결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상공간, 가상 캐릭터는 일부 마니아의 문화로 인식됐지만 이제는 가상공간에 학교가 세워지고 기업이 진출하며, 부동산을 사고파는 등 또다른 삶의 공간으로 자리 잡아 가는 중이다.

앞으로 가상공간에서의 삶이 더 가속화되면 기존 시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일들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게임 아이템 등 디지털 재산의 유산상속 문제라든지 메타버스에서 이뤄진 계약 분쟁이라든지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많다. 법은 인간 삶이 이뤄지는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해결하는 수단이다. 인간 삶의 차원이 변화되고 확장되어 간다면 법적 시각도 그에 맞춰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법률가가 세상의 변화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