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금융산업 리셋, 감독 기능부터 선진화 해야

by송길호 기자
2021.09.10 06:10:00

[신성환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전 한국금융연구원장] 금융산업은 규제 산업이다. 규제는 금융산업의 안전판 역할과 함께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규제의 주 목적은 금융시장안정과 금융소비자 보호이다. 반면 기술발전에 따라 금융산업에 변화가 생길 때 금융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것도 규제이다. 금융회사들은 규제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경쟁한다. 따라서 금융산업이 어떻게 발전하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느냐는 규제가 어떻게 구성되고 진화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규제가 시장참가자들의 행위를 지나치게 제약하거나 시장에서의 경쟁을 억제하면 금융시장의 효율성은 저하되고 금융산업은 낙후된다. 국내 은행그룹들의 낮은 PBR(주식 장부가 대비 시가 비율)은 과도한 규제의 결과이다. 반면 규제가 적기에 도입되지 않는 경우에도 금융산업 발전이 저해된다. 국내에서 수년 간 방치된 P2P 금융과 가상자산 시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규제는 금융시장안정과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한 안전판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금융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진화할 수 있도록 금융산업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규제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규제에는 필연적으로 감독이 수반된다. 규제가 시장참가자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라면 감독은 시장참가자들이 규칙을 잘 지키도록 하는 기능이다. 규제와 감독은 서로 보완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감독기능이 선진화되어 선제적으로 금융시장에서의 위험 요인을 파악할 수 있으면 규제 완화가 수월하다. 반대로 감독기능이 취약하면 규제 완화는 금융사고로 이어지기 쉬운데 최근 발생한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규제가 금융산업의 안전판과 길잡이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선제 조건은 선진화된 감독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규제기관과 감독기관이 서로 다른 이원 체제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금융감독기능을 선진화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는 금융감독기관의 데이터 확보 및 분석 능력, 즉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수년 전 스스로를 금융회사가 아닌 IT 기업이라면서 정체성의 변화를 천명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막강한 디지털 역량을 갖춘 IT 업계의 강자들이 속속 금융산업으로 진출하며 기존 금융회사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들을 감독해야 하는 금융감독기관도 디지털 역량 강화를 최우선적 목표로 두어야 함은 당연하다. 강력한 디지털 역량이 갖추어져 있어야만 금융회사들의 수검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시장에서의 위험 요인을 선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둘째, 시장과의 소통이다. 금융감독기관은 시장과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감독기관이 금융회사에 포획되어서도 안 되지만 시장과 격리되어서도 안 된다. 격리된 상태에서는 시장의 위험을 선제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감독기관이 시장과 제대로 소통했더라면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가 대형사고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셋째, 정치권으로부터 금융감독기관의 독립성 유지이다. 감독기관이 감독 행위 및 결정에 있어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게 되면 감독기관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무너진다. 금융감독기관이 시장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규제가 효과적으로 시장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효력을 발휘하겠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규제기관과 감독기관이 서로 다른 우리나라 현실에서 두 기관 간의 긴밀한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규제당국이 감독당국을 믿고 적극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진화시켜야만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아시아 금융허브가 되겠다는 정책 목표를 수립한 지 20년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주요 금융회사에 대한 시장에서의 평가를 보면 그동안 우리나라 금융은 오히려 퇴보했다고 보여 진다. 예컨대 국내 은행그룹들의 PBR은 20년 전의 4분의 1인 0.5수준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 진출해 있던 외국 은행들이 속속 짐을 챙겨 떠나가고 있다. 금융감독 기능 선진화를 시작으로 규제 완화와 금융회사의 역량 제고로 이어지는 국내 금융산업의 리셋을 본격화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