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에게 묻다]①학연·지연 'SKY캐슬'…한국 경제 성장 가로막는 성벽

by방성훈 기자
2019.02.07 05:00:00

<1>장용성 서울대학교 경제학 교수 인터뷰
소득주도성장,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라 반발 커
소득을 늘리는 건 단기적인 미봉책..생산성 높여야
인적자원 효율적 배분해야 생산성 증대 가능
배경 중시하는 잘못된 관습이 인재 배분 가로막아

[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데일리 방성훈 안승찬 기자]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장 교수는 교육의 문제도, 최저임금의 문제도, 결국 생산성과 효율성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거시경제학자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경제학과 조교수, 미국 리치몬드 연방은행 시니어 이코노미스트, 미국 로체스터대 경제학 교수 등을 거쳤다.

장 교수는 인터뷰 내내 ‘생산성’과 ‘효율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경제의 생산성이 낮은 건 인재풀이 나빠서가 아니라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못해서”라고 했다.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성장하기 어려운 시대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지식을 축적하거나 좋은 인적 자원을 키워내야 한다. 즉 교육이 생산성을 높이는 핵심적인 수단이란 얘기다.

자연스럽게 ‘스카이(SKY)캐슬’ 이야기로 넘어갔다. 상류층의 자녀 교육열을 소재로 삼은 화제의 드라마는 경제학자에게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장 교수는 “드라마에서 그려진 것처럼 막상 교육 문제를 들여다보니 사회 재분배 문제와 시장 불공정성 문제가 뒤엉켜있었다”며 “순수하게 효율성 측면에서만 접근하기엔 무리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장 교수는 공정한 시장경제를 확립하는 게 꼬여 있는 교육 문제를 푸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도 평준화 교육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걸 다 안다. 그런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특수한 학교를 만들면 돈 많은 집안 아이들만 입학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그 돈이 공정한 게임으로 창출한 게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가 받아들이질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정 경쟁이 부재하다는 인식이 교육 분야에서도 비효율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해준다면 교육 문제도 사람들이 더 관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며 “빌 게이츠가 자신이 번 돈으로 자녀들을 비싼 사립학교에 입학시킨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다음은 지난 25일 장 교수의 서울대 연구실에 진행한 일문일답 내용이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장기적인 ‘성장’ 측면에서 보면 인재 효율성을 높이거나 지식 자본을 늘리는, 이 두 가지 트랙 중 하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이 두 가지를 얘기하지 않고 단순히 소득이 늘어나면 성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득주도성장은 아직까지 검증되진 않은 이론이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이 반발하는 것이다. 소득이 자동으로 성장을 이끈다고 볼 수는 없다.

-최저임금 인상으로는 성장이 힘들다는 뜻인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잘못됐다. 소득을 늘리는 건 단기적인 미봉책이다. ‘반짝’ 경기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지만 성장과는 무관하다. 되레 고용창출을 막는 부작용만 낳고 있다. 최저임금을 올렸더니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줄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꿨더니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인다. 한 번 뽑으면 쉽게 해고할 수 없으니까. 결혼을 평생 단 한 번만 할 수 있고 이혼은 절대로 못한다고 생각해보자. 보다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 한국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성장하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인풋을 많이 넣어서 아웃풋(output)이 많이 나오는 것, 양적 성장이다. 이 단계는 지났다. 또 하나는 같은 인풋으로 더 많은 아웃풋이 나오는 것, 즉 생산성을 높여 이루는 질적 성장이다. 노동이라면 같은 5시간을 일해도 더 질 좋은 노동을 의미한다. 그럼 질 좋은 노동은 뭐냐. 바로 휴먼 캐피탈(Human captial·인적 자본)이다. 그런데 똑같은 사람, 똑같은 기계인데도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낸다면, 조직이 잘 돌아가거나 노하우가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산성이다. 지식이 쌓인 것이다. 아이폰처럼 새로운 물건일 수도 있다. 똑같은 삼성 부품을 쓰는데 소비자들은 뭔가 다르다고 느끼니까.



-생산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생산성이 낮은 건 인재풀이 나빠서가 아니다.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못해서다. 우리나라 편의점 직원은 보통 미국 편의점 직원보다 훨씬 똑똑하다. 왜 우리는 똑똑한 인재가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아마 미국에 있었다면 보다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생산성이 높은 경제가 궁극적으로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분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존중이 부족한 것 같다. 일종의 철학의 부재랄까. 사람을 평가할 때 사람 그 자체보다는 학벌, 집안, 배경 등 이런 걸 본다.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 좀 더 유연해진다면 ‘간판을 따기 위해’ 굳이 대학을 가려고 할까.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교육이 정말로 중요한 문제다. 해법이 있을까.

△한국에서 교육 문제는 풀기가 쉽지 않다. 사회 재분배 문제와 시장 불공정성 문제가 엉켜있다. 그래서 순수하게 효율성 측면에서 접근을 못한다. 학창시절부터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평가받기 위한 관점만 형성된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다양한 관점을 만들어줘야 한다. 성적 1등이 아닌 봉사 1등, 성격 1등도 인정받는 사회로 가야 한다. 부모의 소득 창출 과정도 봐야 한다.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과 성공한 사람이 갈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즉 공정한 게임이었다면 결과를 받아들일 거다. 반면 반칙을 해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나뉜다면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공정한 게임이 중요하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다양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사람들도 평준화 교육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걸 다 안다. 효율성을 높이겠다며 특수 학교를 만들면 돈 많은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 주로 입학한다. 그런데 그 돈은 공정한 게임으로 창출한 게 아니라는 인식에 이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두 문제를 분리해서 시장 공정성을 확보해준다면 교육 문제도 사람들이 더 관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다들 소위 ‘SKY 대학’에 가려고 막대한 돈을 쓴다. 그런데 막상 대학이 좋아지는 것엔 별로 관심이 없다. 왜 하버드 대학같은 곳이 나오지 않느냐고 하면서 대학에 돈을 쓰는 것엔 인색하다. 등록금도 10년째 동결이다.

-결국 공정하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런 믿음이 생기면 부자들도 기부를 많이 하고 그들에게 존경심이 생길 것이다. 지금은 기부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고마워한다거나 존경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내놓는다는 사회 인식 때문일텐데, 과거를 청산하는 건 쉽지 않겠지만 조금씩 고쳐나가야 한다. 부작용 때문에 원칙을 버려서는 안된다. 해외 경제학자들은 한국 경제 성장에 대한 연구를 정말 많이 한다. 좋은 성공 사례이기 때문이다. 한목소리로 그 원동력이 교육이라고 한다.

그런데 뉴욕타임스에 한국의 기러기 아빠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한국 교육이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외국에서 교육을 시키려고 한다는 사실에 외국 학자들은 혼란스러워한다.

무역외수지를 보면 해외 유학 및 연수에 지출된 비용이 자동차와 반도체를 수출해서 번 돈의 절반 정도다. 한국에도 그런 좋은 학교가 있다면 그 돈을 한국에서 쓸 것이다. 그럼 다시 처음 문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부자들이 자녀를 남들보다 좋은 학교에 보내는 상황을 과연 대중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