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털 베이스볼]야구로 사유(思惟)하는 철학자 민병헌

by정철우 기자
2015.05.23 09:11:11

사진=두산베어스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

두산 민병헌 선수하고는 나이차가 제법 많이 납니다. 하지만 야구장에 나오면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민병헌 선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ㅠㅠ)

그는 대단한 달변가가 아닙니다. 말을 그다지 재미있게 하는 스타일도 아닙니다. 두산 취재를 와서 많이 웃고 싶으면 홍성흔이나 유희관 선수를 찾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겠죠.

민병헌 선수와 대화가 즐거운 건 그의 말 속에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굳이 어려운 말을 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예의 바른 젊은이가 한참 나이 많은 제게 세상 다 아는 척을 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고 나면 가슴 속에 진한 무언가가 남습니다.



민병헌 선수는 “깨달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말을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야구를 하며 배우고 느낀 점들을 이야기할 땐 그 누구보다 논리 정연합니다. 또 듣는 사람이 참 이해하기 쉽게 말을 해 줍니다.

예를 들면 이런 얘기들입니다.

“예전엔 정말 쉼 없이 야구만 했어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죠. 열심히는 해야 하지만 ‘내가 이만큼 했다’는 만족감을 갖기 위해서 훈련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건 그냥 나만 만족하는 거죠. 나중에 핑계만 되더라구요. 쉴 땐 쉬고 할 때 제대로 하는게 진짜 훈련이더라구요.”

“연습 배팅 때 좋은 타구 날리는 거 아무 소용 없더라구요. 정작 실전에선 그런 공 안 오거든요. 내 타이밍에 맞춰서 내 몸에 얼마나 붙여놓고 치느냐만 테스트 하면 되는 거에요. 저도 그걸 깨달은지 얼마 안됐습니다. 우리 나라는 아직 보여주기가 중요한 거 같아요. 연습때 잘 치는 걸 보여줘야 기회가 온다는 그런 두려움들을 갖고 있죠.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다른 곳에 있더라구요.”

느껴지시나요? 야구라는 단어를 인생이나 노력으로만 바꾸면 그냥 그대로 하나의 철학적인 메시지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전 그래서 민병헌 선수와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저 보다 한참 어린 나이지만 그와 야구 애기를 하다보면 ‘아, 어떻게 살아야 겠다’는 힌트를 얻게 되거든요.

공에 맞은 손에 퉁퉁 붓다 못해 실밥 자국이 남아 있어도 기회만 되면 타석에 들어서려는 악바리. 그에게 ‘왜 그렇게 이 악물고 하느냐’고 물으니 이렇게 답하더군요. “정말 아파요. 하지만 야구를 그만뒀을 때 지금 이 한 타석이 너무 아깝고 미련이 남을 것 같아요. 전 그래서 어떻게든 경기에 나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