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전문경영인체제' 유한양행 '2% 부족하다'

by천승현 기자
2015.03.06 03:00:00

1969년 이후 평사원 출신 대표 선정
매년 매출 성장세..근속년수 업계 최고 수준
R&D 투자 소홀로 신약성과 부진..M&A 시장 소극적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올해로 설립 89년을 맞이한 유한양행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국내 대표적 기업이다. 최대주주는 유한재단(15.4%)으로 ‘주인없는 회사’라는 평가도 듣지만 전문경영인들의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실적은 고공비행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 성장동력 발굴 노력은 미흡해 오너부재의 한계도 노출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유한양행(000100)은 최근 이사회를 열어 이정희 부사장을 차기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이 부사장은 오는 20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되면 유한양행의 21대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를 전망이다.

유한양행 사옥 전경
유한양행은 지난 1969년 주주총회 석상에서 창업주인 고 유일한 박사가 당시 조권순 전무에게 경영권을 승계한 이후 평사원 출신에서 대표를 선정한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다’라는 유 박사의 신념대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선택한 것이다. 현재 1500여명의 임직원 중 유일한 박사의 친인척은 한 명도 없다.

전문경영인의 장기 집권을 차단하기 위해 정관상 대표이사는 1회만 연임이 가능토록 못 박았다. 유한양행 대표이사의 임기는 최대 6년인 셈이다. 김윤섭 사장이 임기 6년째인 지난해 매출 1조원의 성과를 달성하고도 물러나야 하는 이유다. “전 직원들은 누구나 ‘나도 사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과 목표를 가지고 있어 생산성 향상의 원동력이 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유한양행은 지난 2010년 정년을 55세에서 57세로 연장했고 자녀장학금을 대학교 뿐만 아니라 의약학·치의학 전문대학원까지 제공하는 등 직원들에 다양한 복지혜택을 제공한다.

유한양행의 평균 근속년수는 10년7개월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녹십자(7년), 동아에스티(10.4년), 한미약품(4.8년), 대웅제약(6.9년) 등 경쟁사들을 압도한다. 삼성전자(9.5년)보다 직원들이 오래 다닌다.

전문경영인 체제에서의 성적표도 좋다. 유한양행은 1999년 이후 15년 동안 단 한번도 마이너스 성장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별도 기준)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뒀다. 제약산업 이해도가 높은 전문경영인들의 과감한 결단력과 시장흐름을 읽는 안목이 지속적인 성장의 원동력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실제로 김윤섭 사장은 약가인하, 리베이트 규제 등 최악의 영업환경에 부딪히자 다국적제약사의 신약 판권을 따내는 전략으로 난관을 극복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주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이사회와 운영위원회 등에서 협의를 통한 결정을 도출함으로써 전문경영자의 책임경영과 합리적 경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도별 유한양행 매출 추이(단위: 억원)
반면 유한양행은 오너의 부재에 따른 한계도 엿보인다. 매출에서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분기 기준 6.0%에 불과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집계한 업계 평균 5.4%를 약간 웃돌지만 업계 1위의 위용과는 차이가 있다. 상위 10대 기업의 평균 연구개발비 비중 7.9%다. 한미약품이 매출의 20%를 연구비로 쏟아붓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회사를 장기적 안목으로 이끌어야 할 오너가 없다는 이유로 미래에 대한 투자는 인색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실제로 중장기 먹거리인 신약 성과도 지지부진하다. 지난 2005년 국산신약 9호로 허가받은 항궤양제 ‘레바넥스’는 2008년 174억원의 매출로 가능성을 보였지만 100억원 이하로 떨어진 지 오래다. 현재 10여개의 신약을 개발 중이지만 상업화에 근접한 임상3상시험에 진입한 제품은 전무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유한양행이 지난 2년간(2013~2014년) 승인받은 임상시험 건수는 10건으로 일동제약(31건)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다국적제약사의 신약 판매 비중을 늘리면서 상품매출 비중은 72.3%로 상장 제약사 중 가장 높다.

지난해 99억원을 투자해 영양수액제 기업을 인수했지만 넉넉한 자금력을 감안하면 M&A 시장에서는 다소 소극적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유한양행의 현금성 자산은 3620억원에 달한다. 최근 407억원을 투자해 구매대행 업체를 인수한 광동제약(328억원)보다 10배 이상 많다.

간혹 왕성한 투자가 진행됐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유한양행은 지난 2012년 한올바이오파마에 296억원을 투자, 2대주주에 올랐지만 당초 기대했던 R&D 시너지는 요원하다. 또 테라젠이텍스에 200억원을 투자하고 유전체 분석 서비스 시장에 진출했지만 아직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주식 매각에 따른 시세 차익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유한양행의 지분 투자 이후 한올바이오파마(009420)와 테라젠이텍스(066700)의 주가 하락으로 보유 중인 지분 가치는 5일 종가 기준 각각 40%(296억원→179억원), 28%(200억원→145억원) 추락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주기적으로 사령탑이 교체되는 전문경영인체제 특성상 임기내 성과를 내기 위한 경영에 집중하게 되는 구조다”면서 “장기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빈약한 R&D 능력은 시급히 보완해야 할 문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