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한국도로공사 기금에 無설명 고위험 투자…자산운용사가 배상해야"

by하상렬 기자
2021.04.19 06:00:00

자산운용사 추천 美 펀드, 환매중단으로 수십억 손실
法 "투자자보호의무를 위반…손해금 배상 의무 有"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일반투자자에게 투자상품의 투자금 상환이 제한되거나 투자자가 손실을 본 사건이 수차례 발생한 사실을 알리지 않은 자산운용사 등에 대해 투자금 상환 등 손실 발생분을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사진=이데일리DB)
대법원 제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한국도로공사 사내근로복지기금이 A 자산운용사 등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A사는 한 펀드 상품을 개발했다. 해당 펀드는 50~55%를 국내 우량채권에 투자하고, 나머지 45%~50%를 미국 생명보험증권 펀드에 간접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용되는 것이다. 다만 미국 생명보험증권 펀드는 다소 위험이 따르는 상품이었다. 영국 금융감독청이 2011년 11월 내린 지침을 보면, 해당 상품은 ‘매우 복잡하고 높은 위험이 있어 대체로 소매투자자들에게 적합하지 않고, 해당 상품을 이해하지 못한 금융투자회사는 고객에게 해당 상품을 추천하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지적이 따랐다.

하지만 A사는 B 증권사와 해당 펀드의 위탁판매계약 체결 교섭에 들어갔다. B사는 “원금손실 발생 가능성과 영국 사례 등 고려했을 때, 전문투자자를 대상으로만 판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후 2012년 12월 A사와 위탁판매계약을 체결했다.

2013년 1월 한국도로공사 사내근로복지기금의 기금 업무 담당자는 B사에 안정적인 금융투자상품 추천을 요청했다. 이에 B사는 A사의 펀드 가입을 권유했다. 당시 B사는 투자권유 과정에서 해당 펀드가 정기예끔처럼 안정적이라고 했을 뿐, 영국 금융감독청 지침 등 사건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한국도로공사 사내근로복지기금은 해당 펀드를 4회에 걸쳐 총 142억 원 상당 매수했다.



문제는 2013년 4월경 발생한다. 미국 생명보험증권 펀드가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 증가로 유동성 문제가 발생해 모든 환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로써 한국도로공사 사내근로복지기금은 국내 우량채권 부분의 투자금 약 85억 원만 상환받을 수 있게 돼 A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A사 등은 한국도로공사 사내근로복지기금이 일반투자자가 아닌 ‘자본시장법에 따라 설립된 기금’인 전문투자자이기 때문에 투자상품에 대한 전문성이 있고, 투자에 따른 위험감수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피고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심 재판부는 “한국도로공사 사내근로복지기금은 한국도로공사 근로자에 대한 복지후생확충 및 내실화로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에 주된 목적이 있다”며 “주택구매자금 등의 보조나 우리사주 구매 지원 등의 활동을 할 뿐, 금융상품 운용에 따른 수익 창출이 주된 목적인 법인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이어 “해당 금융투자상품에 관한 적합성의 원칙 준수 의무 및 설명의무 등 투자자보호의무를 위반해 ‘투자권유’를 함으로써 원고로 하여금 투자원금 일부를 회수하지 못한 손해를 입게 했으므로 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도 동일한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원고가 전문투자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며 “따라서 원심에 자본시장법상 전문투자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상고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