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10년은 특별하다③]데뷔 30년 인순이, 아직 끝나지 않은 '거위의 꿈'

by김용운 기자
2008.04.10 11:52:50

▲ 인순이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지난 3월 5일 오전 인순이가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오랜 무대경험으로 카메라 플래시 세례에 익숙할 법도 했지만 이 날은 전과 달라 보였다. 자신의 데뷔30주년 기념 전국 투어 콘서트 ‘레전드’ 기자회견이었기 때문이다.

1978년 인순이가 스물 한 살의 나이에 ‘희자매’의 멤버로 데뷔할 때 인순이(본명 김인순)가 훗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자가수로 성장할지 점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인순이는 폭발적인 가창력의 소유자였고 무대를 사로잡는 화끈한 춤 솜씨를 보여줬지만 당시 트렌드를 이끌던 포크 가수도 아니었고, 학사 가수도 아니었다.

오히려 인순이는 혼혈이라는 이질적인 존재로 더 눈길을 끌었다. 1957년 경기도 포천에서 주한 미군이었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인순이의 외모는 단일핏줄을 강조하는 우리사회에서 ‘소외’와 ‘편견’ 그리고 ‘차별’을 안겨줬다. 가수자체로서 평가받기보다 혼혈이라는 외적 조건으로 주목을 받은 인순이의 가수 인생은 그래서 오래갈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인순이는 30년 동안 가수 외길을 걸어왔다. 그 길은 인기 정상에도 닿았고 밤무대를 전전해야 했던 어려운 순간으로도 이끌었다. 인순이는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며 인생이 선사하는 여러 가지 역경과 마주쳤다. 그 와중에 인순이는 자신의 꿈과 희망을 노래했다. 그동안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고 인순이를 앞서 가던 숱한 가수들이 명멸했다.


지난 해 12월 인순이는 서강대학교에서 '거위의 꿈-우리는 누구나 꿈꾸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주제로 재학생들을 비롯해 교직원들을 상대로 2시간 동안 특강을 펼쳤다. 이 자리에서 인순이는 “혼혈로 인해 아직도 근본적인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놔 객석을 숙연하게 했다. 인기 정상의 가수이기 전에 혼혈로 인한 남모를 고민을 평생 지니고 사는 한 명의 사회적 소수자임을 고백해서다.

인순이는 데뷔 30주년을 맞이해 서울 세종문화회관을 비롯해 전국에서 순회 콘서트를 할 만큼 가요계 정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여전히 혼혈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한국사회의 소수자다.

인순이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학교 다닐 때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고 적을 만큼 혼혈로 인한 여러 가지 마음고생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러나 인순이는 ‘노래’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역경을 극복했다.
▲ 인순이

인순이가 “공개적으로 남들 앞에 나서서 뭔가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기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 느낀 가장 큰 놀라움 입니다”고 밝힌 것은 가수라는 직업이 그에게 단순히 생계 이상의 의미였음을 방증 한다. 인순이는 가수라는 직업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켰고 성장시켰다. 인순이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가수라는 타이틀 외에 차별을 극복하고 성공한 소수자들의 상징적인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인순이는 희자매로 데뷔 이후 1980년 1집 앨범 ‘인연’으로 솔로로 나섰다. 인순이는 1981년에 KBS 7대 가수상 수상을 비롯해 1984년 KBS 7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가수로서 인기를 구가했다. 당시 히트한 노래는 경쾌한 디스코풍의 ‘밤이면 밤마다’다. 이후 인순이는 약 10여 년간 밤무대를 전전하는 힘든 시기를 보낸다.

인순이가 약 10여년 간의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는 90년대 중반 KBS의 열린음악회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인순이에게 열린음악회는 라이브와 댄스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가수 인순이의 실력과 가치를 재발견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인순이는 1996년 박진영의 권유로 소울과 댄스가 결합된 ‘또’를 선보인다. 그리고 마흔이 다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인순이는 젊은 가수들 못지않은 파워풀한 가창력과 무대매너로 제2의 전성기를 시작한다. 인순이는 이때 결혼을 통해 인생의 새출발도 함께했다. 가수로서는 드물게 화장품 CF에도 출연하며 여자로서 미모를 뽐내기도 했다.



데뷔 20년을 넘어서 자신의 이미지만을 복제하며 편하게 갈 수 있었던 인순이는 다시 변화를 추구했다. 인순이는 2004년 조PD와 함께 ‘친구여’를 불러 가요계의 충격을 안겨줬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래퍼 조PD와 함께한 노래는 음악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인순이 자신도 세월의 흐름 속에 노회하지 않는 가수임을 증명해 보였다. 한국 가요사에서 전례가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인순이의 데뷔 30주년의 대표곡은 ‘밤이면 밤마다’내지 ‘또’나 ‘친구여’가 아닌 ‘거위의 꿈’이 됐다. 1997년 이적과 김동률의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이 부른 ‘거위의 꿈’은 인순이를 통해 국민가요로 거듭나게 됐다.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거위의 꿈’은 인생의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믿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다. 이 노래는 인순이의 인생사와 결부되면서 사람들에게 보다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인순이는 ‘거위의 꿈’에 대해 “꿈을 꿈이라고 할 수 없었고 꿈조차 가질 수 없었던 저의 인생과 노래가사가 너무 일치해 놀랐다”며 “노래를 통해 희망과 어떤 길을 보여줄 수 있길 바랐고 ‘거위의 꿈’이 마침 그런 곡이었다”고 설명했다.

인순이는 이적에게 ‘거위의 꿈’ 리메이크 허락을 받았고 2007년 정식 싱글 앨범으로 선보였다. 인순이의 ‘거위의 꿈’은 지난해 연말 원더걸스의 ‘텔미’ 열풍속에서도 공중파 가요차트프로그램에서 1위에 올랐다. 가수 인순이에게 처음 벌어진 일이었다. ‘거위의 꿈’이 현실이 되던 순간이었다.


인순이는 지난해 연예인 학력위조 파동 당시 당사자 중 한 명이 됐다. 중졸 학력을 고졸 학력으로 속여 왔던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인순이는 “가난으로 인해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놨고 스스로와 팬들에게 정직하지 못했다며 용서를 구했다.

그러면서도 인순이는 “저는 동정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며 사람들의 이해의 시선에 선을 그었다. 인순이는 자신이 외부에서 평가하는 것처럼 “착하지만도 않고 이기적인 부분도 있고 거짓으로 포장된 부분도 있다”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봐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구차하게 변명하던 다른 연예인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인순이의 이런 모습은 공중파 드라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KBS 2TV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를 연출한 표민수 PD는 주인공 이름과 드라마의 전개가 인순이의 삶에서 모티브를 얻어왔다고 밝힌 바 있다. 표 PD는 주인공으로 출연한 김현주가 극중에서 ‘거위의 꿈’을 부르는 장면을 통해 인순이의 극적인 삶에 존경을 나타냈다.
 
▲ 인순이

인순이는 올해 데뷔 30주년 기념공연 타이틀을 ‘레전드’(legend)로 정했다. 한 시대를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 전설로 불리고 싶은 그의 바람이 담긴 제목이다. 스물 한 살의 나이에 데뷔해 쉰 살이 넘어서까지 현역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인순이에게 부족함 없는 타이틀이다.

그러나 인순이는 아직 전설이 되기에 이르다. 전설이 되면 전설에 갇히게 되고 그 순간 과거가 된다. 인순이는 아직 가수로서 걸어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 환갑이 되도, 고희가 되도 무대에서 열정적이고 파워풀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거위의 꿈'을 부른 인순이에게 바라는 팬들의 염원이다. 인순이가 전설로 불리는 것은 당분간 보류다. 그의 앞에는 데뷔 40주년, 데뷔 50주년 등 더 이뤄야할 꿈들이 기다리고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