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빅5' 대신 강소전문병원, 이런 게 의료 정상화다

by논설 위원
2024.03.14 05:00:00

대형병원 전공의 이탈로 인한 의료 공백이 3주가 넘었다. 그러나 우려했던 의료 대란은 아직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환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생명을 다투는 중증 환자가 아니라면 이른바 ‘빅5’ 대신 지역 종합병원이나 전문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국공립 공공병원도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전공의 약 1만 2000명이 현장을 이탈했으나 국민의 반응은 차갑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뒤틀린 의료 전달 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1일 서울 영등포구의 명지성모병원을 찾았다. 명지성모병원은 뇌혈관질환 전문병원으로 전문의 35명이 진료한다. 인턴·레지던트와 같은 전공의는 없다. 한 총리는 “정부가 구현하고자 하는 의료 전달 체계와 전문의 중심병원의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고 말했다. 12일 국무회의에서도 “전문성을 갖춘 강소전문병원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분야별 전문병원은 의료 전달 체계에서 ‘허리’에 해당한다.



국공립 공공병원의 존재감도 새삼 돋보인다. 코로나 사태 때 지역의료원들은 거점병원으로 큰 역할을 했다. 이번에도 전국 66곳의 공공의료기관들은 비상대응 체계를 가동 중이다. 하지만 공공병원의 비중은 전체 의료기관의 5% 수준에 불과하다. 전공의들은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현장을 벗어났다.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면 공공병원 비중을 더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재정 지원 확대가 필수다.

빅5 쏠림은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흉부외과 등 필수의료 확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은 비정상적인 의료 체계를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전공의 이탈은 역설적으로 국내 의료 시장이 얼마나 왜곡됐는지, 이를 바로잡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 소중한 계기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료개혁을 원칙대로 신속하게 추진한다는 방침을 재천명했다. 대통령의 강고한 태도에는 여론의 뒷받침이 있다. 정부는 전공의 약 5000명에게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 사전통지를 마쳤다. 중노동에 시달리는 전공의들이 왜 증원에 반대하나. 여론이 외면하는 의료계의 집단반발은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