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강의 '좌표' 올라오자 몰려드는 악플러들

by박지연 기자
2020.03.20 00:30:57

유튜브 실시간 온라인 강의에 악플러들 등장
강의 내용 무관한 발언으로 수업 방해
경기대 총학 "명예훼손 등 법적 대응 검토?
유튜브 대체할 동영상 플랫폼에서 강의

경기대에 재학 중인 박승기(21·가명)씨는 수강 중인 교양 강의를 듣기 위해 유튜브에 접속했다. 담당 교수가 유튜브의 실시간 방송 기능을 활용해 수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강의가 시작됐지만 수업 내용과 관련 없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응디(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거 연설 중 사용했던 단어)’, ‘등록금 꺼억’... 댓글창이 난잡해지자 담당 교수는 실시간 강의를 조기 종료해야만 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학들이 온라인으로 강의를 대신하고 있는 가운데 16일 오전 광주 남구 광주대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노트북 등을 이용해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16일부터 전국의 일부 대학들이 개강을 하면서 온라인 강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을 활용한 실시간 강의에 외부인이 접속하면서 학습 환경을 방해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많은 교수들이 각 대학의 자체 플랫폼을 통해 비대면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나 일부 교수들은 유튜브를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익명성을 악용해 외부 사이트에 실시간 비대면 강의의 주소가 공유되자 불특정 다수가 해당 링크에 접속해 강의 채팅창을 마비시킨 것이다.

온라인강의가 실시된 지난 16일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는 '온라인 강의 좌표(강의 링크) 올린다'는 제목의 게시물이 다수 올라오기도 했다. 이러한 게시물이 올라온 뒤 대학 온라인 강의에서 실제로 '댓글 테러' 피해가 발생했다.

16일 경기대 A교수의 실시간 비대면 강의의 채팅창 일부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교수님 하이' '교수탈갤' ... 욕설로 도배된 채팅창

경기대 A교수는 16일 진행한 실시간 비대면 강의 채팅창에서 댓글 테러를 받았다. 강의와 상관 없는 내용의 댓글이 달리는 것은 물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모욕 발언, 교수 비하 발언이 연이어 달린 것. 또한 페이스북·트위터 등 인터넷 커뮤니티로 이러한 댓글이 일파만파 퍼져 경기대 학생들은 한때 '교수에게 예의가 없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조영훈 경기대 총학생회장은 “경기대 학우들이 이 사안에 대해 대단히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해당 사안에 대해 교수회·교무처와 논의했고 초상권 침해·명예훼손 등 혐의로 법리적 검토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업은 수업인지라 (피해를 받은) 교수님은 다른 플랫폼으로 강의를 진행 중이다”고 설명했다.

경기대 교무처는 사건 발생 후 교수들에게 채팅 기능이 있는 플랫폼을 활용해 강의 진행시 주의해줄 것을 공지했다. 조씨는 “현재 교수 대부분이 ‘경기대 LMS’라는 자체 페이지를 활용해 강의를 진행하지만 일부 교수들은 외부 플랫폼을 사용한다”며 “총학생회측에서 유튜브 실시간 비대면 강의를 할 교수들은 채팅창을 닫아놓고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학교측에 요청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16일 금오공대 B교수의 실시간 비대면 강의 댓글 중 일부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댓글테러로 상처 받은 사람 너무 많아

같은 날 금오공대 B교수의 강의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B교수가 유튜브를 활용해 진행했던 첫 실시간 비대면 강의에 장난 댓글 및 전화가 쏟아져 피해를 받은 것이다.



B교수는 학교의 수강변경 신청 기간이 18일부터 시작하는 것을 감안해 수강신청을 하지 않은 학생들도 자신의 강의를 들어볼 수 있도록 유튜브 ‘전체공개’로 실시간 강의를 진행했다.

또한 강의 초반에 댓글창을 활성화하고 자신의 연구실 내선번호를 공개하기도 했다. B교수는 “처음 맞는 비대면 강의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참여도를 이끌어내기 위해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언제든 질문하라는 차원에서 공개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원이 38명인 강의에 800명 이상의 인원이 몰렸고 수업 내용과는 관련 없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시속 523km로 봉하산에서 떨어지면 죽나요?”

이 질문은 노 전 대통령이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서거한 날짜인 2009년 5월 23일을 희화화한 것으로 보인다. B교수는 “강의 초반부터 수업과 관련 없는 질문이 올라와 이상하다고는 느꼈지만 장난으로 받아줬는데 나중에서야 ‘낚였다’는 것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B교수는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떨면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를 해주려고 했다”며 “이 일로 인해 크게 당황했지만 나뿐만 아니라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사건 이후 B교수는 유튜브 대신 다른 온라인 화상강의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

B교수는 “학교 측에 유튜브를 활용한 강의의 문제점을 학교 측에 경고했고 전체 교직원에게 공지가 된 상황”이라며 “유튜브 대신 다른 프로그램을 활용해 강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조만간 학교 측에서 해당 방식으로 강의할 것을 교수들에게 권고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온라인 등 비대면 강의를 통해 서울 시내 주요 대학들이 개강한 16일 서울 서대문구 한 가정집에서 올해 대학에 입학한 20학번 신입생이 랩탑 컴퓨터로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 "악플 통해 존재감 확인하는 것"

전문가는 온라인 강의현장까지 등장한 악플러들의 행태에 대해 “그러한 행동에서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악플러들은 악플을 달거나 고인 비하 발언을 하면서 타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아도 본인은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기 위해 훼방을 놓는 것"이라며 "대상이 누구인지, 어떠한 이념을 갖고 있는지는 상관없이 마치 하나의 놀이·장난처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냅타임 박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