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위, 9000만원짜리 '빈손 출장'[현장에서]

by조용석 기자
2023.05.31 05:30:00

재정준칙 팽개치고 유럽 배우겠다며 떠난 기재위원
출장보고서 곳곳 '재정준칙 꼭 필요' 유럽의 충고
공급망법 필요성도 강조한 유럽…‘사경법과 연계’ 조언 없어
1분위 월소득 80배 쓴 출장…6월 임시국회 달라질까

[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출발도 전에 이렇게 요란한 출장도 드물 것이다. 재정준칙 논의가 시작된 이후 30개월이 흐른 지난달, 갑자기 재정위기 경험을 직접 듣겠다며 유럽으로 떠난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출장이 그것이다. 최초 이데일리 단독 보도로 출장 사실이 알려진 후 이들은 여론의 거센 비난에도 꿋꿋이 출장을 떠났다.

하지만 이들이 유럽 출장을 다녀온 후 열린 지난 15~16일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에서 재정준칙 법제화는 논의도 되지 못했다. 돌연 재정준칙 법제화 논의를 밀어두고 8박10일 8876만원의 비용을 들여 떠난 유럽 출장이니 조금이라도 달라졌을 것이라는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다.

국회 기재위 여당 간사(왼쪽)인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과 야당 간사인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재위 소위에서 대화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최근 공개된 관련 ‘출장 보고서’를 보면 더욱 아쉽다. 보고서에는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비롯해 스페인 국회(하원) 면담 과정에서 재정준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한국의 도입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부분이 수차례 나온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출장단에 “유럽도 재정준칙을 토의하고 있다. 매우 좋은 원칙”이라며 “또 코로나가 끝나고 에너지가격도 내려가고 있으니 각 정부에 지출에 대해서 정책변화를 주문하고 있다”고 했다.

국가 부채로 큰 어려움을 겪었던 스페인의 가르침은 더 또렷했다. 스페인 대표단은 출장단에 “재량적 경기부양책의 시행 등으로 재정위기를 경험하면서 재정 규율의 도입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며 “(재정준칙 도입을 위해)2011년 헌법개정 및 2012년 재정조직법을 개정했다”고 전했다. “재정준칙 도입으로 재정 건전성과 함께 사회적 능력도 커졌다”고도 했다.



재정준칙과 함께 눈여겨볼 부분은 공급망이다. 이들은 출장목적에 ‘글로벌 탈동조화에 따른 공급망 이슈를 진단하고 EU가 최근 추진 중인 핵심원자재법안 현황을 파악한다’고 썼다. 스페인 측은 출장단에 “이번 경제위기로 유럽은 많은 것을 배웠다”며 “수입이 한 나라에 쏠리면 생산망도 무너지고, 생산망이 중국에 몰려 있어 위험이 증가함에 따라 이를 인접국으로 옮기면서 공급망의 안정성 확보하는 노력이 유럽 전체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제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도 했다. 재정준칙뿐 아니라 공급망법의 필요성도 가르쳐준 것이다.

국회 기재위 소속 유럽 출장단이 스페인 하원 본회의를 참관하는 모습(자료 = 출장 보고서 캡쳐)


공교롭게도 재정준칙 법제화 및 공급망기본법은 모두 기재위에서 공회전하고 있다. 두 법안은 야당이 관련도 없는 사회적경제기본법(사경법)과 연계·처리할 것을 요구하면서 계속 지지부진하다. 그러나 출장단이 유럽에서도 만난 누구도 재정준칙 법제화나 공급망기본법을 사경법과 연계해 처리해야 한다고 조언한 부분은 없다. 또 출장단에 동행한 야당 국회의원도 이를 묻지 않았다.

이번 8박10일 유럽 출장에서 공식일정은 몇 개 없었다. 남은 시간 무엇을 했는지도 자세히 기재돼 있지 않다. 그렇다면 유일하게 바랄 수 있는 부분은 반목했던 여야 간사가 충분한 대화를 가져 의견차를 조금이라도 좁혔을 것이란 기대다. 하지만 5월 임시국회의 모습을 보니 기대감을 갖긴 힘들 듯하다. 2023년 1분기 소득 1분위 가구 월소득의 80배가 넘는 혈세를 쓴 출장이었기에 가치가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