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 확대경] 위기의 첼시, 해결사가 그립다

by임성일 기자
2008.01.08 11:58:32


[이데일리 SPN 임성일 객원기자] 예상외의 힘을 발휘하는 아스널, 예상대로 순항하는 디펜딩 챔프 맨체스터Utd.에 이은 3위로 2008년을 맞이했으니 결코 나쁜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과는 왠지 느낌이 다른데, 확실히 ‘기세’와 ‘분위기’라는 측면에서 주도권을 빼앗긴 것은 사실로 보인다.

 2005년 프리미어리그 정상에 오르면서 솟구쳤고 2006년 2연패를 달성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알렸으며 지난 시즌 아깝게 2위에 그친 아쉬움을 FA컵 우승으로 달랬던 ‘신흥명문’ 첼시의 신바람 나는 행보가 올 시즌 다소 주춤한 인상이다. 억만 부호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를 만난 이후에는 딱히 남부럽지 않았던 첼시였는데 겹치는 악재에 제법 고생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나마 ‘이’가 없어도 버틸 수 있는 단단한 ‘잇몸’을 지닌 첼시니까 이 정도라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지, 어지간한 클럽이라면 크게 주저앉을 수도 있었다.

 구단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던 젊은 카리스마 J.무리뉴 감독이 시즌 초 지휘봉을 반납하면서 첼시의 불안한 행보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클럽의 기술고문이던 아브람 그란트가 바통을 이어받았으나 거대한 함대를 이끌기에는 네임 밸류와 커리어에서 모두 부족해 보인다는 설왕설래가 분분했던 기억이다.

 불운은 겹쳐서 온다더니, 클럽하우스의 리더인 F.램파드와 J.테리를 비롯해 적잖은 인원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는 통에 온전한 스쿼드를 가동치 못하고 있으니 또 답답할 노릇이다. 물론, 몇몇이 빠진다 한들 다른 클럽에서 바라볼 때는 큰 차이 없을 만큼 짱짱한 멤버를 보유한 첼시다. 다만, 입장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분명 불안한 기운을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그래도 첼시 특유의 공고한 수비력은 여전하다. 다른 설명을 차치하고,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6경기에서 단 2실점밖에 허용치 않았던 지독한 짠물 수비라면 사실 말 다했다. 32개 참가클럽을 통틀어 최소실점이다. 요컨대 들고 있는 방패는 딱히 흠잡을 데 없이 듬직하다. 다만 상대를 찌르기 위한 창이 무디다는 것, 해결사다운 해결사의 활약이 미미하다는 점이 마음고생의 근본 원인이다.

 물론 첼시는 특정 공격수의 활약에 크게 좌우되지 않을 만큼 뛰어난 공격력을 지닌 미드필더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에이스 킬러가 존재하는 가운데 다양한 지원사격이 가미되는 것과 불가피하게 루트가 분산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21라운드까지 진행된 현재 프리미어리그 득점 랭킹 20위 안쪽에 첼시 소속 플레이어가 없다면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무릎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지난 시즌 득점왕 D.드로그바의 5골이 팀 내 최다득점이니 꽤나 빈공이다. 맨체스터Utd.의 C.호날두(13골)-C.테베스(8골) 콤비, 아스널의 E.아데바요르(12골)-C.파브레가스(6골) 듀오 등 라이벌 클럽들의 전방과 비교하면 보다 쉽게 와 닿을 것이다.

 부활을 기대했던 득점기계 A.세브첸코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으며 바이에른 뮌헨에서 새로 영입한 C.피사로는 고작 1골을 신고했을 뿐이다. 서브요원으로 점지한 S.칼루(5골)가 나름대로 몫을 하고 있으나 그래도 무게감은 떨어진다.

 클럽 입장에서는 드로그바의 복귀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1월20일~2월11일) 차출’이라는 변수가 발목을 잡았다. 클럽 사정에 아랑곳없이 드로그바는 ‘코트디부아르의 네이션스컵이 우선’이라는 뜻을 천명했고 자연스럽게 칼루도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자리를 비우게 된다. 현 시점 가장 믿을만한 2명의 공격수가 빠진 상태로 연초를 보내야하는 입장이기에 그란트 감독의 우는 소리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예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M.에시앙(가나), J.O.미켈(나이지리아) 등도 아프리카로 떠나야하니 허리라인 역시 부실해진다. 이런 상황이기에 D.베르바토프(토튼햄), N.아넬카(볼튼) 등 겨울 이적 시장에 나온 ‘매물’들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식이 줄기차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늘 풍요로웠던 첼시에게도 이번 겨울은 퍽이나 시릴 것이다. 세브첸코가 전성기 절반의 컨디션만 보여도 지금처럼 머리가 아프진 않을 것이다. 막힌 체증을 풀어줄 수 있는, 그야말로 해결사가 몹시도 그리울 첼시. 답답하게 엉킨 실타래를 풀지 못한다면 프리미어리그 권좌복귀, 오매불망 바라는 챔피언스리그 정상 등극은 자연스레 멀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