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중환자실 지켜줄 의사가 없다" 의료계 폭탄돌리기 '시작'

by이지현 기자
2022.12.19 06:00:00

전공의 깜깜한 미래…소아청소년과 가파른 붕괴
흉부외과 산부인과 터닝포인트서 해답 찾아야

지난 16일 오후 서울 대한의사협회에서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대한아동병원협회 주최로 ‘소아청소년 건강안전망 붕괴 위기 극복을 위한 합동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2019년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아침 인천 가천대길병원 소아청소년과 당직실에서 2년차 전공의(레지던트)가 숨진채 발견됐다. 병원 측은 ‘돌연사’라고 표현했지만, 조사결과 전공의는 주당 113시간을 일하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공의법’에 따르면 전공의 수련시간은 주당 80시간 이내로 제한된다. 16시간 연속 수련을 한 전공의에게는 10시간 이상 휴식시간을 줘야 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전공의들은 밤샘 당직과 응급 환자, 중환자 진료를 감당하는 현실은 변함이 없다.

전공의 그들은 누구

전공의들의 소아청소년과 외면은 가파르게 진행 중이다.

19일 보건복지부의 소아청소년과 지원 현황에 따르면 2019년까지만 해도 해마다 200여명 모집에 지원자가 정원을 초과했지만, 2020년 지원율이 78.5%로 내려가더니 2021년에는 37.3%로 반토막났다. 그리고 올해는 23%, 내년 상반기 지원자는 16.3%까지 내려갔다.

김지홍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장은 “내년엔 필요 전공의 인력의 39%만 근무가 가능할 것”이라며 “전공의 부족의 대체로 교수와 전문의 당직에 의존해 유지해왔으나, 이미 2년을 경과한 한계상황에 도달해 지방과 수도권까지 거점 수련 병원의 응급진료 및 입원 진료 축소가 급속도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전공의는 의과대학 졸업 및 의사면허 취득 후 약 4~5년간 수련과정에 있는 초기 커리어 의사다. 이들은 4~5년이 지나고 시험 등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시장 가격의 절반도 되지 않는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감내하고, 근로기준법을 넘어서는 주당 80시간, 주 2~3회의 36시간 연속근무를 전공의가 묵묵히 감내해야 하는 어찌 보면 부당한 제도 모두 전공의가 수련생이라는 명목에서 구축됐다. 따라서 전공의는 배우는 단계의 의사라는 측면에서 전문의와 역할을 달리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법적책임은 전문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보니 소송과 민원이 많은 분야로의 선택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해외 대부분의 나라들이 상급종합병원 진료의 경우 교수와 전문의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우리나라에선 유독 전공의 의존도가 높다보니 전공의 지원자가 줄면 진료마비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공의가 없다면 전문의를 충분히 채용해야 하지만 인건비 문제로 적극 채용에 나서지 않고 값싼 전공의로 대체해온 것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수가가 낮게 책정돼, 한마디로 돈이 안 된다는 인식 때문에 병원에선 전문의가 필요해도 충분한 인력을 채용하지 않으려 한다”라고 귀띔했다.

미래가 사라진 소청과…피해는 아픈 아이들의 몫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전문의를 취득하면 개원했던 이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소아청소년과 폐업만 662개소나 됐다. 한 달 수입이 25만원, 마이너스를 찍는 상황도 수두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에 아이를 돌보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던 전공의들마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고개를 돌리고 있다.

최근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는 입원환자 진료 잠정 중단을 발표했다. 전공의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입원 환자를 진료할 인력이 부족해서다. 영남권의 A대학병원 응급실은 소아 진료가 아예 안 되고 있고 언제 열지 기약이 없는 상태다. B종합병원도 야간 진료를 없앴다. 울산에 있는 대형병원은 지난해 가을부터 소아 응급실을 아예 없앴다. 응급실에서 소아 환자를 받아도 메인 진료과인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없으면 진료에 한계가 있어서다.

이같은 상황은 아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8월 응급상황을 맞은 5세 아이는 경기 C병원에 연락했으나 받아줄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서울에 D상급병원에서도 심폐소생술 후 소생되면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것을 조건으로 받아주겠다고 했지만, 결국 이 아이는 골든타임을 놓치며 숨지고 말았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아이들 병은 증상이 생기고 나서 급격히 나빠져서 큰 장애 남기거나 사망할 경우가 있는 병이 많다”며 “소아과 전문의가 보고 빨리 상급종합병원에 보내서 치료를 받게 해야 하는데, 코로나 팬데믹(전세계 대유행)으로 인한 40% 진료량 격감으로 지역거점 1차 진료체계 붕괴가 진행되며 2~3차 전공의 수련병원도 최악의 인력위기와 진료체계의 붕괴 및 소아청소년과 진료 대란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흉부외과 다시 관심…타산지석 삼아야

의료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봤다. 20년 전 이미 흉부외과 수련의 부족사태가 발생했고 이후 산부인과도 직격탄을 맞았다. 다음은 소아청소년과가 될 거라는 전망이 현실화한 것이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 의사회장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뾰족한 해법이 없는 건 마찬가지”라며 “앞으로는 이비인후과 등 의료 전반 위기로 확대될 수 있는 만큼 관련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 희망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산부인과 지원율은 올해 60.2%로 최저를 기록했지만, 내년 상반기 지원자는 71.9%로 정원이 19명 늘었음에도 지원자가 33명이나 늘었다. 흉부외과 지원자도 올해 66명 선발에 19명만 지원했던 것이 내년 상반기 모집엔 70명 모집에 36명이 지원했다.

대한흉부외과학회 한 관계자는 “교수들이 수련의들과 함께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당직을 함께 서는 등 수련환경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며 “이 분야 연구개발을 위해 학회가 있을 때면 전국에서 모여서 후배들을 위한 교육 훈련을 전담하는 것도 지원자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