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 리베이트 복마전]⑥줄줄새는 개인정보

by이현정 기자
2013.09.16 06:00:10

밴대리점, 개인정보유출 유혹에 상시 노출

[이데일리 이현정 정병묵기자] 서울 도봉구에서 밴대리점을 하는 박진수(가명·48)씨는 창업컨설팅도 병행한다. 그의 책상 위에는 특정카드사 가맹점 가입신청서와 IC카드용 단말기 설치 확인서 등의 서류가 수십장씩 쌓여있었다. 박 씨는 한쪽 벽면의 캐비닛을 열더니 서류철을 꺼냈다. 그 안에는 카드 가맹점 주인의 주민등록증 사본, 사업자등록증, 통장 사본 등이 보관돼있었다. 박 씨는 “마음만 먹으면 가맹점주뿐 아니라 그 가맹점에서 카드를 긁은 사람의 카드사용내역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가맹점주의 개인정보가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 영세한 밴대리점들은 가맹점주의 개인정보를 창업컨설팅사나 프랜차이즈 사업주에게 건당 몇만원에서 많게는 수십만원에 넘기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일부 밴대리점은 박 씨처럼 아예 자체적인 컨설팅사업을 펼치기도 한다

밴대리점은 가맹점으로부터 각종 개인 신용정보가 담긴 가입서류를 받아 카드사에 제출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이 때 밴 대리점은 서류를 따로 복사하거나 컴퓨터에 저장해 놓는다. 한 밴대리점 대표는 “공인인증서를 통해 해당 가맹점의 일·월·연별 매출액과 거래정보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며 “불법인 줄 알지만 밴수수료 수입이 줄어들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밴대리점은 밴사를 대신해 가맹점 관리와 단말기 설치, 전표수거업무 등을 하고 밴사로부터 위탁대행 수수료를 받는다. 밴사가 카드사로부터 받는 수수료(건당 80~170원) 중 30원 정도가 밴대리점에 돌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밴사와 밴대리점은 일종의 ‘갑을(甲乙)’ 관계다. 밴대리점은 약정건수에 미달할 경우 밴사에 페널티를 낸다. 예를 들어 매월 카드결제건수가 약정 수준에 미달하면 받은 수수료의 3배 정도인 90~100원을 밴사에 물어준다. 밴대리점은 또 매월 수십대의 카드단말기 의무구매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밴대리점 관계자는 “밴사의 실적 압박, 과도한 페널티 비용 등을 마련하려면 밴수수료 수입만 가지고는 버티기 힘들다”고 “카드와 관련한 모든 거래 정보를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에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밴대리점의 열악한 사정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개인정보유출 가능성 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정부는 밴대리점의 실태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현재 전국의 밴대리점은 약 2000곳으로 추정된다. 밴사와 달리 설립신고도 없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직원 1~2명으로 운영하는 영세한 밴대리점이다.

여신금융업계 관계자는 “결제 정보가 밴사를 통해 카드사로 가고 다시 밴사를 거쳐 가맹점으로 오기 때문에 밴사와 그 업무를 대행하는 밴대리점은 각종 거래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며 “가맹점의 판매관리 단말기(POS)는 해커들이 공격도 쉬워 다량의 정보가 한꺼번에 새어나갈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신용카드 업무는 금융위가 관장한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 관련 업무는 방송통신위원회 관할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두 부처간 책임 떠넘기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밴사는 금융위의 소관이지만 개인정보 유출 사안과 관련 모호한 부분이 많다”면서도 “백화점이나 식당에서 결제할 때 이를 대행해주는 업무에 대한 규제는 본질적으로 안전행정부의 개인정보보호법이 더 적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