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저승사자 반쪽부활]①금융수사 노하우 축척한 검사 배제…"과거 합수단과 같은 성과 어려...

by하상렬 기자
2021.07.12 05:50:00

출범 앞둔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 실효성 논란
검사의 '직접 수사' 기능 배제…유관기관과 협력 주력
檢 파견직원 조율·지도 역할뿐
금융범죄 대응 역량 약화 불가피…허울뿐인 기구될 수도

[이데일리 하상렬 남궁민관 기자] 법무부가 최근 ‘검찰 직제 개편’을 통해 지난해 1월에 해체한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을 협력단의 형태로 부활시키면서 그 구성과 역할 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방안은 검찰 수사관들을 대규모로 배치해 금융·증권 범죄 대응력을 높인다는 정도일 뿐 검찰의 직접 수사 권한은 배제될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검찰이 직접 수사에 제약을 받을 경우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면서 자칫 ‘면피성’ 조직구성에 그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사진=연합뉴스)
검사 ‘직접 수사’ 배제…수사관 팀장 중심 협력에 방점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찰청은 다음달 예정된 검찰 수사관 등 일반직 인사 전 내부 서울남부지검에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이하 협력단)’ 설치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조만간 검찰 내부 공모를 통해 협력단 조사업무를 담당할 수사관들을 대규모로 채용할 예정이다.

협력단 신설은 지난 2일부터 시행 중인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개정안에 근거한다. 법무부는 지난달 25일 단행된 검찰 고검검사급 검사(중간간부) 인사에서 단장으로 회계분석 분야 공인전문검사인 박성훈 부부장검사(사법연수원 31기)를 임명했다.

대검은 박 부부장검사를 중심으로 검찰 수사관을 대거 채용해 협력단을 구성키로 결정한 것으로, 총 10개 수사팀을 설치하고 그 팀장에 사무관급 수사관을 앉히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협력단의 전신으로 꼽히는 합수단의 경우 검사가 팀장을 맡았지만, 협력단은 합수단과 달리 ‘직접 수사’ 권한이 배제된 만큼 수사관들을 중심으로 경찰·국세청·금융감독원 등 유관기관과의 협력에 주력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합수단은 지난해 1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폐지했다가 박범계 장관이 ‘금융범죄 대응 강화’ 필요성을 근거로 협력단 형태로 1년 4개월여 만에 부활시켰다.

금융당국과 전문가들은 일단 협력단 설치를 반기는 분위기다. 과거 합수단이란 ‘컨트롤 타워’ 아래 유관 기관들이 서로 협력했던 체계가 금융·증권 범죄 대응에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합수단 폐지 후 사건 처리율 2%…“檢 역할 ‘협력’ 그쳐선 안 돼”

사실 합수단 폐지 이후 금융 범죄 대응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대검찰청이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본시장법 위반 관련 이첩사건 처리 현황’ 자료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금융위원회로부터 ‘주가 조작’·‘분식 회계’ 등 총 35건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을 수사 의뢰받았지만, 1건을 약식기소 처분하는데 그쳤다.

2017년만 해도 검찰은 81건을 접수해 모두 처리했다. 2018년엔 76건 중 64건을, 2019년엔 56건 중 38건을 처리, 사건 처리율만 각각 82%, 58%에 달했다. 반면 합수단이 폐지된 2020년에는 사건 처리율이 13%(58건 중 8건)로 급락했고, 올해들어선 지난 5월 기준 약 2%로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합수단은 지난 2013년 출범 후 7년 동안 1000여 명에 달하는 자본시장법 위반 사범을 법정에 세우는 등 성과를 내며 ‘여의도의 저승사자’라는 별칭이 붙었다. 잘 알려진 사건으로는 지난 2018년 ‘유령 주식’을 고의로 매도한 삼성증권 직원들을 기소한 사건과 235억 원 상당의 부당 이득을 챙긴 ‘네이처셀 주가 조작’ 사건 등이 있다. 특히 합수단은 주가 조작 의심 범죄를 한국거래소가 심리해 검찰로 넘기는 기한을 최소화한 ‘패스트 트랙’을 통해 수사를 벌여 증권 범죄 사건 이첩 기간을 종전 최소 1년 이상에서 최대 4개월 이하로 크게 줄이며 금융 범죄 대응력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역할을 하던 합수단이 폐지되자 증권 범죄 대응 ‘속도’는 크게 저하됐다. 합수단은 폐지 당시 ‘라임 자산운용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합수단이 사기범 일당을 일망타진하고 자금 흐름을 추적할 시기에 문을 닫게 되면서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라임 사태’는 지난 2019년 7월 관련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수사는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 상태다. 합수단 부활 필요성이 요구되는 지점인 셈이다.

다만 아무리 수사 역량을 갖춘 수사관을 대규모로 배치하더라도, 검사의 ‘직접 수사’ 기능이 배제된 상황에서 오로지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수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는 ‘한계’ 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수사권 축소’ 라는 목표에 급급해 당초 기대한 합수단과 같은 성과를 내기 어려워, 협력단은 결국 허울뿐인 기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자본시장범죄 수사를 강화하는 방향성엔 찬성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협력단을 운영하고 또 어떻게 힘을 실어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 “검찰 역할이 파견직에 대한 조율·지도에 그친다면, 국가적 차원에서의 범죄 대응 역량이 약화될 수밖에 없어 결국 범죄자들만 이득을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