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너무 좋아서 MD가 되고 싶어요” - 취준생에 11년 차 MD의 조언

by박한나 기자
2018.11.14 00:00:00

[이데일리 박한나 기자] 패션계 취업을 원하는 이들 다수가 고려하는 직무는 MD다. MD는 상품 기획부터 판매까지 책임지는 머천다이저(merchandiser)로, 패션 트렌드의 한가운데 있는 직업이다. 반면 “MD는 ‘뭐든지 다 한다’의 약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만만치 않은 업무강도로 알려졌다.

좋아하는 옷에 파묻혀 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옷을 좋아한다고 해서 MD일을 잘할 수 있을까’ 고민된다는 MD 지망생을 대신해 11년 차 MD에게 조언을 들어봤다.

김정아 스페이스눌 대표
김정아 스페이스눌 대표는 2007년부터 국내에서 수입 브랜드 편집숍 ‘스페이스눌’을 운영한다.

그는 편집숍을 통해 ‘에르노’ ‘하쉬’의 여성복 라인을 국내 처음 소개했고, ‘호프’ ‘타이거오브스웨덴’ ‘메릴링’ ‘스테판슈나이더’ 등 국내 소비자에게 낯선 해외 브랜드를 국내에서 성장시켰다.

서울대 노어노문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러시아 문학박사이자 패션 중소기업 사장으로 이중생활 중이다.

패션 전공이나 패션계 커리어로 시작하지도 않은 그가 11년간 수익구조가 탄탄한 회사를 만든 것에는 경영자이기 전 탁월한 MD였기 때문이다.

그는 2015년부터 올해까지 ‘패션 MD(부제-패션MD가 알아야 할 모든 것)’ 1~3권을 출간, 자신이 패션계에서 좌충우돌하며 얻은 정보를 공유하는 등 패션계 후배에게 애정이 많다.

다음은 김정아 대표와의 문답.

패션회사의 전반적인 업무를 다 한다고 보면 맞다. 구체적으로 브랜드 찾기, 바잉(매입) 준비, 오더 넣기, 오더 팔로업(후속 업무)와 같이 바잉 전반에 관한 것, 또 재고량 조절, 급한 완불 주문 건에 가격표 붙이기 등이다.

제 생각에 이중 가장 중요한 일은 매장이 하나인 경우에는 바잉을 잘 하는 것이다. 고객 성향을 파악해 샵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유행을 선도해야 한다. 매장이 여러 개일 경우에는 특정 아이템이 잘 팔리는 점포에 알티(rotate: 물건 넣어주기)를 잘해 판매를 촉진하는 것이다.

우선 백화점의 경우 MD나 바이어라 불리는 직함이 있지만, 이는 백화점 매장 입·퇴점 관리 업무가 주요하기 때문에, 편집숍 MD의 일과는 성격이 다르다. 내가 얘기하는 것은 여성복 편집숍에서 브랜드를 직접 바잉하는 MD다.

기업규모가 다르더라도 기본적인 업무는 비슷하지만, 대기업은 한 편집숍 내에서도 MD가 국가별 등으로 분화된 곳도 있다. 모든 업무를 다 배우려면 아무래도 중소기업에서 시작해야 기본기가 탄탄해 질 것이라 생각한다.

수입 패션계를 봤을 때 살짝 슬픈 점은 대기업이 아니라면 단단한 멀티숍이 많지 않아, 수입 MD 지망생들이 설 자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하지만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아니겠나. 패션계에 귀와 눈을 열어 놓고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가장 행복한 점이자 뿌듯한 점은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시즌의 따끈따끈한 아이템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해외 출장 시 시차와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몸이 아플 정도로 피곤할 때도 어쩌다 예쁜 아이템, 신선하고 포텐셜이 높은 브랜드를 발견하면, 눈이 반짝반짝 해 진다. 그 아이들을 한국에 소개했을 때, 판매로까지 자연스레 이루어지면 더없이 행복하다.

어려운 점은 MD의 역할이 사실은 시장이 만들어진 뒤 팔릴 아이템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시장과 트렌드를 만드는 것이다. 편집숍 고객들은 얼리어댑터다. 편집숍에서 소비자 반응을 보며 브랜드와 아이템을 키운 뒤, 대중화 되면 모노 브랜드로 나오는 순인데 이 과정이 쉽지 않다.

또 브랜드를 소개해서 키워 놓으면 큰 회사들이 빼앗아 가고 다른 데서 똑같이 오더 하는 것도 어려운 점이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디자이너는 많고, 브랜드도 많다. 항상 발품과 손품을 팔고 열린 눈, 깨어있는 마음으로 있으면 이런 문제들도 어느 정도는 해결된다.



옷을 정말 좋아해서 MD가 되겠다는 건 좋다. 실제로 내가 그랬기 때문에 11년차가 된 지금도 너무 재밌다.

어느 만큼 좋아해야 하냐? 묻는다면 ‘한 달간 굶더라도 내가 원하는 아이템은 사야 직성이 풀릴 정도의 강한 열정’이라고 하겠다. 만약 이것이 허영으로 느껴진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나이가 들면 현실과 균형을 맞춰 타협하게 되는데, 막 시작하는 젊은 시절에 이정도 열정은 있어야 한다.

세세하게 말하면 분야를 선택할 때도 내가 좋아하고 많이 사본 옷, 안 되면 많이 입어본 옷이어야 한다. 아니라면 백전백패다. 내 라이프스타일 속에 있는 물건이어야 대상 고객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바잉은 두 세 시즌 가르치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옷에 애정을 가지고 브랜딩하려는 열정, 자신이 자발적으로 키운 ‘패션을 보는 눈’은 가르칠 수 없다.

반대로 그냥 직장인으로서 MD가 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발품을 정말 많이 팔아야 하고 쉴 시간도 적고. 쉽지 않다.

지난 10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에비뉴엘에서 열린 ‘프랑스 열정의 역사-가죽 패션 제품’ 전시. 프랑스 대표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 로저 비비에 등 시대상을 보여주는 브랜드와 상품을 전시했다. 김정아 대표는 프랑스 현대 브랜드 200개 중 한국 시장에 맞는 상품을 바잉해 선보였다.
핫한 또는 핫하게 될 브랜드 빠르게 발굴하기, 현장 판매 경험을 통한 판매직원에 대한 이해, 알티와 불량의 빠른 처리를 위한 재고 수위 관리다.

패션에 대한 열정 만큼 판매 직원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실제로 외국 MD는 대부분 훌륭한 판매직 출신이다. 물건을 알고 고객을 알아야 좋은 바이어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패션에 대한 열정은 대부분 MD에게서나 찾을 수 있지만, 판매 직원들에 대한 존경심을 갖는 MD는 아주 드물다. 정말로 다양한 고객이 있기 때문에 판매직은 MD 업무의 열 배, 스무 배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MD가 되고자 한다면 1년 정도는 판매를 해보며 고객의 눈 높이에 맞춰 생각하고 재고 관리하는 법을 익힐 것을 추천한다.

요약하면 스타일링 센스, 아이템을 보는 직감, 다년간의 경험이다.

또 최상의 체력과 체격을 갖추고 6개월에 한 번씩 돌아오는 바잉 전쟁에 임해야 한다. 팁으로는 바잉을 앞둔 시점에 내 체중을 적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바잉에 나가 새로운 옷들을 입어보면서 사이즈를 정확히 체크하기 위해서다. 옷을 굉장히 좋아하고 평범한 몸매를 가진 MD들이 입어서 예쁜 옷이 실제 판매도 잘 되는 옷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밖에 매장의 고객의 연령대를 꼭 염두에 두고 바잉하는 것이다. 아무리 귀여워도 내 매장 고객의 연령대가 높다면 그런 옷은 살 수 없다. 고객의 연령대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선호도 등을 고려해서 바잉을 해야 판매로도 연결이 된다.

맞다. 유니크해서 바잉하는 게 있고 커머셜해서 하는 것이 있다.

커머셜(상업적)하면서 꾸준한 팬층을 누릴 수 있는 아이템이 70% 정도가 되는 걸 권장한다. 나머지 30% 정도는 톡톡 튀는 유니크한 아이템을 넣어 주면 좋다. 하지만 그것은 재정적인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고, 만약 빡빡한 자금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유니크 아이템 10%, 커머셜 90% 정도도 괜찮다. 각 샵의 사정에 따라 유니크 아이템은 10-30% 정도 범위에서 조정하면 정체성도 유지하며, 재미도 더 할 수 있을 것이다.

뭐든 2~3년이 지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A부터 Z까지 다 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말고 늘 깨어 있기를 당부한다. 꼭 옷이 아니더라도 모든 것에서 영감을 느끼고 그걸 디스플레이, 매장 내 오브제, 팝업 시안 등과 연결해봐야 한다. 보고 듣는 모든 것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 살아 있는 MD의 의식이자 매너리즘을 방지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