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따스한 공감이야기…영혼체인지로 '자유의지' 들여다봐"

by이윤정 기자
2019.06.12 05:04:00

장편소설 '진이, 지니' 출간
보노보와 영혼 바뀌는 사육사 이야기
인간의 '자유의지' 완결편
"보편적 공감 이끌어내는 소설 쓰고파"

정유정 작가는 “동물에게 연민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에게도 연민을 갖지 않는다”며 “동물을 비롯해 다른 생명체가 다 사라지면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다”고 말했다(사진=은행나무).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왜 나는 다른 무언가의 모습을 하고 여기에 서 있는 것인가. 왜 하필 내가 구조한 유인원의 모습인가. 나는 이미 죽은 것인가.(중략) 가까스로 눈을 뜰 용기가 생겼다. 거울 안에서 지니가 눈을 마주쳐왔다. 총명하게 빛나는 그 눈은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백 가지도 넘지 않아?”(‘진이, 지니’ 중)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 이른바 ‘악의 3부작’으로 독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정유정(53) 작가가 따스하고 다정하게 돌아왔다.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소설 ‘진이, 지니’(은행나무)를 통해서다. 작품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직후 보노보 ‘지니’의 몸속으로 들어간 ‘진이’의 영혼이 자신의 몸을 되찾기 위해 사흘 동안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다. 인간과 가장 흡사한 DNA를 가진 영장류 보노보와 영장류연구센터 사육사가 주고받는 교감을 통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마주하게 된 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경쾌한 리듬으로 끌고 간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은행나무 본사에서 만난 정 작가는 “이번 작품에선 ‘공감과 공존’을 강조했다”며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는 순간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연민하는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의 ‘자유의지’ 완결판

‘진이, 지니’는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2007), ‘내 심장을 쏴라’(2009)에 이어 인간의 ‘자유의지’를 다룬 완결판 격이다. 정 작가가 해석하는 ‘자유의지’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무명시절 6년 동안 11번이나 공모전에 떨어지고 등단에 실패하면서 스스로 얻은 결론이다. ‘자유의지’는 삶을 상대하는 전사이기도 하다. 마음속에 전사가 없으면 자신의 운명과 싸울 수 없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에서는 15살에 자유의지가 발현됐고, ‘내 심장을 쏴라’는 10년 후 25살 청년을 등장시켜 인생에서 자유의지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줬다. ‘진이, 지니’는 또 다시 10년 후 35살의 여성 진이를 통해 죽음 앞에서 자유의지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를 다뤘다.”

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조사에만 6개월이 걸렸다. 직접 영장류연구센터를 찾아갔고, 국내외 보노보 전문가들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어떤 작품을 쓰든지 지독하리만큼 철저한 조사와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단 한 줄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대공원의 우경미 사육사와 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님을 찾아갔다. 다행히 교수님께서 내 소설들을 읽어봤던 터라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무서운 소설을 쓰는 사람이 어떻게 동물에 관심을 갖게 됐느냐’고 물어보더라. 하하. 보노보를 직접 눈앞에서 보고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소설을 구상했고, 전체 기간은 1년 5개월 정도가 걸렸다.”

30여년 전 떠나보낸 어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보낸 ‘마지막 사흘’이 삶을 향한 치열한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단 4일 동안 일어난 일을 원고지 1500매에 달하는 분량에 담았다.

“어머니의 임종이 가까이 왔을 때 3일동안 심장만 뛰고 있는 상태였다. 곁을 지키면서 엄마의 영혼은 어디를 떠돌고 있을까 생각했다. 엄마와 손깎지를 껴봤는데 내 손을 잡는 느낌이 들더라. 이런 경험들이 소설에 많이 들어가 있다.”

△외국서도 사랑받는 ‘보편적 주제’

정 작가의 작품은 프랑스·독일·일본 등 해외 20여개국에서 번역·출판돼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까지도 외국을 돌며 독자들을 직접 만났다.

“이전까지는 한국 소설이 이념에 갇혀 있는 줄 알았는데 한국 작가들의 문학성이 이렇게 뛰어난 줄 몰랐다고 칭찬하더라. 인간의 본성을 끈질기게 파고드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런던에서 ‘북콘서트’를 할 때는 한 명도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었다. 북콘서트가 끝나고 매장에 진열돼 있던 책도 모두 팔렸다. 서점 주인이 처음 있는 일이라며 또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다음에 불러달라’고 말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원래 ‘진이, 지니’를 쓰기 전에 ‘바다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를 쓰려고 했단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지배해야 한다는 소신도 전했다.

“소설가는 소설 속 세계에 대해서 신처럼 알아야 한다. 파리 한 마리도 내가 모르게 날아가면 안된다. ‘진이, 지니’에서도 민주의 지갑에서 나오는 물건들을 열거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나중에 상품권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야기의 큰 판을 짜려면 시공간을 장악해야 하고, 그러려면 정말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그런 소설을 써 볼 생각이다.”

정유정 작가(사진=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