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pick]트럼프는 왜 탄핵논란에 '대법원'을 끌어들였나

by이준기 기자
2019.04.25 05:25:27

"민주당, 탄핵 시도 땐 대법원으로 갈 것" 트윗 논란
탄핵, 美의회 고유권한…언론 "대법원 개입 불가능"
보수색채 '대법원=내 편' 착각…시간 끌기 해석도

사진=AFP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만약 당파적인 민주당원들이 (대통령) 탄핵을 시도한다면 나는 먼저 대법원으로 갈 것이다.”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및 ‘사법방해 의혹’을 수사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의 최종 보고서 편집본 공개 이후 미국 야당인 민주당 일각에서 ‘대통령 탄핵론’이 제기되자, 도널드 트럼프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적은 글귀 중 일부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탄핵에 맞서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다만, 미국 대통령의 탄핵은 전적으로 미국 의회의 고유권한이라는 점에서 ‘대법원행(行)’ 아이디어에 대한 의도와 배경이 뭔지를 놓고 워싱턴 정가가 술렁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공모도, 사법 방해도 없었다. 나는 전혀 잘못한 것이 없다”며 ‘양대 의혹’에 대한 ‘결백’을 거듭 강조했다. 논란은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의 탄핵 절차 개시 땐 ‘연방대법원’을 끌어들이겠다고 언급하면서 불거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언급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삼갔지만, 대법원을 끌어들여 미 의회의 ‘행동’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미라고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이와 관련,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대법원에 (탄핵의) 적법성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의미라고 썼다.



문제는 미국 헌법 제1조 2항과 3항을 보면, 대통령 탄핵은 전적으로 미 의회의 몫이라는 데 있다. 하원 법사위가 대통령이 탄핵을 받을만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판단하는 청문회를 여는 게 첫 절차다. 이후 탄핵 결의안이 하원 표결에 부쳐 전체 과반수 표결로 의결할 수 있다. 상원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결의안에 동의하면 탄핵은 가결된다. 물론 상원 탄핵심판 때 평소 부통령이 맡는 상원의장을 연방대법원장이 맡아 심판을 진행하지만, 표결은 상원의원들만 행사할 수 있다. 즉, 대법원장은 판사의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며, 배심원 역할은 상원의원들이 맡는 구조다.

사진=AFP
실제로 미국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소송’을 심리할 공산은 크지 않다고 본다. 노너선 털리 미 조지워싱턴대 로스쿨 교수는 이날 CBS방송에 “탄핵은 법적 기준에 기인하지만, 본안은 입법기관인 의회에 속하는 것”이라며 “사법적 검토나 개입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미 언론들도 “탄핵은 의회에서 이뤄지는 정치적인 절차”(USA투데이), “대법원이 소송에 심리할지는 불투명하다”(더 힐)고 트럼프 대통령의 아이디어를 회의적으로 내다본 배경이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아이디어가 ‘대법원은 내 편’이라는 그릇된 믿음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상 미 언론에선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한 9명의 대법관 중 보수와 진보 성향 인사를 각각 5:4로 구분한다. 이들 보수인사 5명 가운데 닐 고서치와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앉힌 인물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의 각종 낙마 시도에도 이들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 하지만, 로런스 트라이브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이날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인사들로 채워진 대법원이라고 해도 상·하원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대법관 임명이 ‘처벌 면제 카드’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일종의 ‘시간 끌기’ 전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미 대법원은 지난 1993년 만장일치로 “탄핵 심판을 위한 권한은 의회에 있다”고 공언한 바 있다는 점에서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트위터에 “의회는 (탄핵) 법안을 처리할 시간이 없고, 내가 이미 승리한 마녀사냥만을 지속하기를 원한다”고 언급한 점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뮬러 보고서 공개 이후 줄곧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범죄는 비뚤어진 힐러리와 민주당원, 민주당 전국위원회, 더러운 경찰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역공을 펴는 점도 ‘시간 끌기’의 일종으로 해석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