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생태계 무너져…도미노 타격에 부품中企 '아우성'(종합)

by김정유 기자
2018.10.24 04:00:00

車산업조합, 산업부에 3조원 자금지원 요청
대금 못받는 협력사들 '도미노' 자금압박
전문가들 "단순 임가공서 벗어나 글로벌 소싱업체 모색해야"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김정유 권오석 기자] 인천 소재 자동차부품 2차 협력사인 A사는 최근 자금조달 차질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 일부 1차 협력사들에게 물건을 납품하고도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이다. 가뜩이나 자금 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은행에서조차 A사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을 불허했다. 자금난에 허덕이던 A사는 최근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을 통해 정부 당국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A사 대표는 “올해를 넘기는 것 자체를 최우선 경영 목표로 임하고 있다”며 “정부에서도 자동차산업이 무너지면 한국 경제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음을 알고 있는만큼 자금을 지원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내 완성차 시장 불황이 1·2·3차 부품 협력사들로 확산하면서 산업 전반에 걸친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산업통상자원부에 3조 1000억원 규모의 자금지원을 요청한 것도 이 같은 자동차부품업계의 절심함을 반영한 행보다. 자동차부품업체들은 자금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향후 국내 자동차산업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연간 5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경남 소재 자동차내장재 업체 B사도 올해를 ‘보릿고개’라고 말할 정도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선 매출액은 전년대비 1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영업이익은 무려 90%나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간 적자전환까지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현대·기아차의 1차 협력사인 B사는 거래처 상황에 따라 실적 변동이 크다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특히 지난해 이후 주력시장인 중국에서 매출액이 반토막 나면서 자금운용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B사 임원은 “현재 비상경영체제를 이어가면서 비용 감축과 함께 채용 동결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은행권이 자동차부품업체를 상대로 신규 대출과 대출 연장 등을 잘 해주지 않으니 우리 같은 중견기업도 자금운용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국GM 공장이 있었던 군산에서는 부품업체들의 상황이 더 심각하다. 최근까지도 폐업하거나 공장을 폐쇄하는 2·3차 자동차부품 협력사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GM이 지난 5월 군산 공장 폐쇄를 결정한 데 따른 여파다. 군산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자동차부품업체 오토젠은 군산 공장을 올 하반기부터 가동하지 않고 있다. 이 회사는 기존 군산 공장에 있던 설비들을 경기 시흥사업장으로 옮겨왔다. 오토젠 인근에 위치한 부품업체 삼성공업도 지난 7월부터 군산 공장을 폐쇄하고 인천 본사로 설비 등을 이전한 상태다.

이 밖에 엠에스메탈, 크레아지에스 등 자동차부품 업체들도 군산 공장에 최소한 인력만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군산 자동차부품 생태계는 아사 직전이라는 게 지역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군산 자동차부품 업체 관계자는 “한국GM 공장 철수 이후 군산 지역 자동차부품 생태계는 사실상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며 “현장에는 아직도 처리 못한 설비들이 방치된 채 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삼성증권이 자동차부품 상장사 24곳의 올 1분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46%나 줄었다. 특히 이중 절반 가량은 영업적자였다. 이익률도 하락했다. 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89개 자동차부품 상장사들의 올 1분기 영업이익률은 0.9%에 불과했다. 2016년 3.5%, 지난해 2.4%였던 영업이익률이 올해 들어서는 1% 미만으로 떨어진 것. 최근 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산업부에 3조 1000억원 규모의 자금지원을 요청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이 점차 확대되기 때문이다.

자동차부품 업계는 정부 자금지원이 적기에 이뤄져 이번 고비를 넘길 경우 향후 국내 대기업 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업체로의 수출을 확대하는 근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고문수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전무는 “현재 국내 자동차 판매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내 자동차부품 업체들은 GM·포드 등 해외 업체들과 거래하기 위한 협의를 활발히 진행 중”이라며 “다만 수출 전 시설투자를 해야하는 상황인만큼 현행 금리 수준으로 만기 연장 등 자금지원을 적절히 해준다면 이번 고비도 잘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차 협력사들이 해당하는 중견기업계에서도 이 같은 자동차부품 업계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외형적 덩치는 크지만 자금순환이 되지 않을 경우 그 어떤 기업도 생존하기 어렵다는 게 중견기업계 설명이다. 중견련 관계자는 “전후방 연관 효과, 고용유발 효과가 큰 자동차산업의 몰락은 산업 전반에 걸친 경쟁력 악화는 물론 돌이킬 수 없는 경제적 충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라면서 “현장을 질식시키는 무분별한 채권 회수를 지양하는 것은 물론 미봉책 수준의 자금 지원이 아닌 자동차산업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지원뿐만 아니라 자동차부품 업체들의 자체적인 체질 개선 노력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동주 중소기업연구원 기획조정본부장은 “덴소 등 일본 자동차부품 업체들의 경우 대부분 글로벌 업체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자생적으로 성장해왔다”며 “그간 국내 부품업체들이 대기업 대상의 단순 임가공만 했다면, 이젠 대기업 의존도를 낮추고 해외 업체들과 거래하며 성장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