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결국 16㎜ 영화필름 모자이크 같은 것

by오현주 기자
2021.05.25 03:30:01

표갤러리 박승훈 '트래블로그: UK' 전
피사체 대상을 가로·세로줄 분할 촬영
필름 한줄씩 엮어 씨실·날실처럼 직조
리듬 탄 움직이는 평면이 튀어나온 듯
불협화음 낸 파편들 낯선 장면 만들어

박승훈 ‘텍스투스 302 레든 홀’(영국 런던·2021). 영화 ‘해리포터’의 촬영지였다는, 거대한 돔으로 덮인 아케이트 시장이다. 디지털 C 프린트, 150×120㎝(사진=표갤러리).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첫 시선부터 많은 게 밀려든다. 그림인가 사진인가, 조각을 냈나 금을 그었나, 구멍을 그렸나 구멍을 뚫었나. 그러다가 원초적 궁금증에 도달하기도 한다. 과연 실재하는 장소이기는 한가.

이후 다가설수록 실체는 분명해진다. 여러 장의 기다란 필름을 대바구니 짜듯 겹쳐내 만든 이미지라는 것이. 눈썰미가 있다면 사각조각에 점처럼 박힌 작은 구멍에서도 힌트를 얻었을 터. 씨실 날실처럼 ‘직조’한 기법까지 말이다.

사진작가 박승훈(43)은 독특한 조형성을 가미한 이 작업으로 국내외에서 지대한 관심을 받아왔다. 셔터를 눌러 현상을 멈춰낸 것은 다르지 않은데 드러낸 방식이 확연히 달랐던 거다. 리듬을 제대로 탄, 움직이는 평면이 튀어나온 듯하달까.



16㎜ 영화필름이 시작점이다. 피사체를 가로줄 세로줄로 분할해 촬영하고 그 필름을 한 줄씩 엮어낸다. 그래서 ‘텍스투스’(Textus)다. 라틴어로 직물이란 뜻이다. ‘텍스투스 302 레든 홀’(Textus 302: Leaden Hall·2021)은 파편화한 저 이미지의 배경이 된 곳이다. 영국 런던의 ‘레든 홀 마켓’. 영화 ‘해리포터’의 촬영지였다는 아케이트 시장, 그 거대한 돔 아래 들어선 상점들이 이제야 하나둘 보인다.

박승훈 ‘텍스투스 297 로열 마일’(영국 에든버러·2021). 오래전 왕가만 다닐 수 있었다는 도로를 촬영했다. 디지털 C 프린트, 120×150㎝(사진=표갤러리).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5길 표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트래블로그: UK’(Travelog: UK)에는 작가가 코로나19 이전 영국여행을 통해 채집한 뒤 같은 방식으로 작업한 신작들을 걸었다. 또 다른 런던 거리에선 시내 유명한 스포츠 펍인 ‘페이머스 쓰리 킹스’(Famous 3 Kings)를, 리버풀에선 비틀스가 숨어 있을 듯한 ‘매튜 스트리트’(Mathew Street)를, 에든버러에선 오래전 왕가만 다닌 도로였다는 ‘로열 마일’(Royal Mile)를 촬영하고 또 조각냈다.

멀쩡한 공간에 굳이 불협화음을 끼워 서걱거리는 장면을 빼낸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세상은 낯선 파편들을 모아낸 거대한 모자이크일지도 모른다는 암시, 그게 닳고 무뎌지고 평평해져야 비로소 편안한 그림이 되더란 암시. 풍경도, 진리도, 또 인생까지 말이다. 전시는 6월 4일까지.

박승훈 ‘텍스투스 277-1 페이머스 쓰리 킹스’(영국 런던·2020). 런던 시내 유명한 한 스포츠 펍의 실내를 들여다봤다. 디지털 C 프린트, 150×101㎝(사진=표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