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금수저가 되었나..로스쿨생의 고백

by전재욱 기자
2016.02.11 05:00:00

전세금빼고 대출받아 진학한 로스쿨
난데없는 법무부 사시폐지 4년 유예 주장
가투에 나선 동료들 뒤로한 채 시험장으로
진짜 금수저라면 억울하지나 않겠다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나는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생이다. 사법시험(사시) 도전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막연한 미래를 계속 좇기에 형편이 넉넉지 못했다. 법학 전공을 살려서 대기업 법무팀에 입사했다. 나름 만족스러웠다.

현실에 안주한 데서 비롯한 패배감이 옅어질 무렵 변호사 시험을 통과한 로스쿨 출신 법조인이 등장했다. 마지막 기회인 것 같았다. 법학적성시험(LEET)을 준비하는 것부터 생소했다. 한 차례 낙방하고 어렵게 지방 로스쿨에 들어갔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처음으로 지방 생활을 하려니 서울에 두고 온 처자식이 눈에 밟혔다. 비싼 학비도 부담이었다. 전셋집 평수를 줄여 마련한 돈과 직장 생활하면서 모은 저축을 보탰다. 그래도 모자란 학비는 대출을 받았다.

로스쿨에 입학하자 주변에서 나를 ‘금수저’라고 불렀다. 학비가 비싼 로스쿨을 다닌다는 게 이유다. 학비가 비싼 것은 사실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작년 전국 25개 로스쿨의 평균 연간 등록금은 1569만원이다. 그나마 3년간 들어간 학비 가운데 절반은 장학금으로 감당한 게 다행이었다. 로스쿨협의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로스쿨 등록금 대비 장학금 비율은 37.6%(358억4600만원)다. 로스쿨 안에 금수저가 있는 것도 맞다. 한 동기는 아버지 로펌을 물려받으려고 로스쿨에 입학했다고 했다.

나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공직이나 대형 로펌에서 부름을 받기 어렵다. 가장으로서 한 가정을 건사해야 한다는 부담은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졌다. 멀리 떨어진 처자식을 그리워하는 시간조차 사치였다. 주말에도 상경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았다.



이미 포화 상태인 법조시장에서 어중간한 실력으로 살아남기 쉽지 않다. 이런 위기의식은 로스쿨생 모두의 학구열에 불을 지폈다. 로펌을 물려받을 처지가 못 되면 성적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다. 남들이 금수저라고 부르는 로스쿨생은 대부분 이런 부류다. 그래서 우리는 말이 동료지 사실은 경쟁자다.

하지만 모래알처럼 지내던 로스쿨생들이 지난해 말 하나가 되는 일이 터졌다. 법무부가 2017년 폐지하기로 한 사시를 2021년까지 유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로스쿨 제도에 문제가 많으니 당분간 사시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저들 말대로라면 문제 많은 로스쿨을 나온 나는 변호사 시험을 합격해도 함량미달 법조인이 되는 것인가?

사시유예 발표는 경쟁의식보다 더 큰 위기의식으로 다가왔다. 동기와 후배들이 길거리에 나섰다. 제5회 변호사 시험이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이었다.그러나 나는 이 대열에 끼지 못했다. 아니, 끼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다시 현실과 타협해야 했다. 동료들이 사시유예 조치 반대투쟁을 벌일 때 나는 도서관에서 막바지 시험 준비에 매달렸다. 동기들과 후배들은 처자식이 달린 내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지만 지금까지도 죄책감이 떠나지 않는다. 나는 금수저가 아닌 법조인이 되고 싶을 뿐이었다.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