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천연가스값 폭등…韓, '에너지 대란' 넘어 '경기침체 가속화' 우려

by김형욱 기자
2022.09.02 05:00:01

유럽, 러시아 에너지 무기화에 '비상'
韓 수입처인 중동 등으로 공급망 대체
물가상승· 무역적자 확대로 이어질 듯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러시아가 유럽연합(EU)으로 가는 천연가스관을 걸어 잠그는 등 ‘에너지 무기화’를 본격화하면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나라가 올 겨울 에너지 수급 불안을 겪는 수준이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국제 현물시세 1년 전의 6.3배로 ‘껑충’

1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 액화천연가스(LNG) 현물가격 지표인 JKM은 지난달 25~26일 마감 기준 100만BTu(열량 단위)당 69.665달러를 기록했다. 1년 전(10.965달러)과 비교해 무려 6.3배나 뛰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였던 3월2일(50.68달러)에 비해서도 35.5%나 더 올랐다.

러시아가 EU를 상대로 천연가스 무기화에 본격적으로 나선 8월 이후엔 오름세가 더 가팔라졌다. 러시아 국영기업 가스프롬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고장·대금 미납 등을 이유로 독일·프랑스로 가는 천연가스관을 최소 수일간 끊는다고 밝혔다. 유럽 각국은 자연스레 비상이 걸렸다. 자국 전력생산·도시가스 수요의 상당 부분(독일 55%·프랑스 17%)을 러시아발 천연가스관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을 줄이기 위해 중동·미국 등 다른 지역의 액화천연가스(LNG)를 확보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LNG는 지금까지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4개국이 사실상 독점적으로 써 왔는데, 갑자기 유럽이란 거대 수요처가 생겨난 것이다.

유럽은 가스관을 이용한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비용이 저렴한 탓에 LNG에는 눈독 들이지 않았었다. 연 4000만톤(t)의 천연가스 수요를 사실상 전량 LNG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은 높은 비용부담은 물론 수급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AFP)
에너지 위기, 韓 경제 전반에 ‘먹구름’

국제 천연가스 가격의 급등이 우리나라에 끼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요 발전연료 중 하나인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한국전력(015760)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오는 전력도매가격(SMP)은 1일 1킬로와트시(㎾h)당 229.02원까지 치솟아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9월 월평균 도매가도 지난 5월(202.11원)을 넘어 역대 최고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평균 전기판매가격이 110원 전후인 상황에서 한전은 원가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전기를 판매해야 하는 최악 상황에 처했다. 한전은 올 상반기에만 14조30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난방을 위한 도시가스 수급 및 가격 부담도 커졌다. 한국가스공사(036460)는 해외 가스전 사업으로 국내 도시가스용 판매 손실분을 만회하고 있어 한전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현 추세라면 미수금이 당초 전망치(7조9000억원)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한국 경제 전반에 끼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다. 현 상황이 한전·가스공사 같은 에너지 공기업의 부담을 키우는 것을 넘어 소비자물가나 무역수지에도 결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급증하는 에너지 수입액은 역대 최대 규모의 무역적자 배경이 되고 있다. 올 10월에는 전기·가스요금이 추가 인상돼 물가 상승 압박도 더 커질 전망이다.

박진호 에너지경제연구원 가스정책연구팀장은 “국제 LNG 가격이 안정되려면 미국이나 중동, 아프리카 등 천연가스 생산국이 LNG 생산기지를 확보해야 하는 2025년 이후에나 가동이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당분간 물가 상승이나 무역적자 확대 등 경제 악영향은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전기·가스요금을 더 억누르기도 어렵고 물가 안정을 위해 급격히 올릴 수도 없는 만큼 정부는 이를 단계적으로 요금에 반영하는 식으로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에너지 공기업·민간기업과 함께 에너지수급 비상대책반 회의를 열고 천연가스 수급 현황과 겨울철 대비 계획을 점검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앞으로 1~2주 단위로 점검을 진행해 비상 상황에 조기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미얀마 가스전. (사진=포스코인터내셔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