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70년대보다 심각한 부채의 덫…한번 시작한 인플레 잡기 어려워"

by김정남 기자
2022.06.29 04:00:01

[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②
세계 3대 투자 대가 짐 로저스 인터뷰
"각 정부, 중앙은행에 전권 줘야"
"주식 90% 이상 폭락 각오해야"
"농업 관련 주식·펀드 투자할만 …금·은도 유망"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요즘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식료품, 휘발유, 주택(월세 포함), 자동차 등 안 오르는 게 없다. 가계는 씀씀이 줄이기에 골몰하고 있고, 기업은 임금 등 비용 부담에 해고를 늘리고 있다. 그래서 나오는 게 경기 침체 공포다. 이는 전 세계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화두다. 그렇다면 현재 경기 상황을 1970~1980년대 오일쇼크와 비교하면 어떨까.

“내 생애 최악의 불황이 오고 있다.”

세계 3대 투자자로 꼽히는 짐 로저스(80)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1942년생이다. 조지 소로스와 퀀텀펀드를 공동 설립한 게 1970년이다. 1970~1980년대 최악의 오일쇼크를 월가 한복판에서 체험한 것이다. 그런 그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이데일리와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한 첫 답변은 “이번 불황은 1970년대보다 더 나쁠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가 내놓은 가장 중요한 근거는 ‘빚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로저스는 “1970년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과 과도한 복지 지출에도) 여전히 순채권국(creditor nation)이었다”며 “최악의 상황은 부분적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현재 미국은 세계 최대 순채무국(debtor nation)”이라며 “그 차이는 엄청나다”고 설명했다.

미국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미국의 대외순자산(NIIP·순해외투자포지션)은 -18조1000달러다. 단연 세계 최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74%다. 빚이 너무 많으면 해외 투자자들은 달러화 비중을 줄일 유인이 커질 수 있다. 기축통화 패권이 당장 깨지지는 않겠지만 ‘약한 달러’로 갈 가능성은 작지 않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치솟는 금리가 눈덩이 부채의 이자 부담을 키울 수 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미국 국가부채는 2008년 4분기 10조 7000억달러 규모였는데, 올해 1분기 사상 최대인 30조 4000억달러까지 불어났다. 부채가 많은 경제가 취약하다는 상식에서 미국도 자유롭지 않다는 게 로저스의 지적이다.

로저스는 “1970년대에도 국가부채가 많았지만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1970년대 돈 풀기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았다”며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고 우려했다.

세계 3대 투자자로 꼽히는 짐 로저스(80) 로저스홀딩스 회장(왼쪽)이 지난 24일(현지시간) 김정남 이데일리 뉴욕특파원과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정남 특파원)


“한번 시작한 인플레, 잡기 어렵다”

-미국에서 침체 논쟁이 뜨겁다.

△(1970년대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의 급격한 복지 지출과 베트남 전쟁 비용 지출 등) 과거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잘 알고 있다. 빚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말이다. 미국은 2009년 이후 역사상 한 번도 볼 수 없던 속도로 부채가 급증했다. 다음 침체가 온다면 그것은 내 생애 최악일 것이다. 사람들은 정말로 걱정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그렇다. 1970년대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돈 찍어내기가 많았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국가들이 막대한 양의 돈을 찍어내고 빌리고 있다. 엄청난 빚을 떠안게 될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곳에서 역사적인 불황이 올 수 있다.

-현재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보나.

△인플레이션은 한번 시작하면 잡기 어렵다.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기업은 생존하기 위해 직원 월급을 올려줘야 하고, 그러면 또 물건값을 더 인상해야 한다. 이것은 또 다른 기업과 가계에 영향을 준다. 그런 점에서 인플레이션은 자생하면서 확대하는 측면이 있다. 과거 인플레이션들이 모두 그랬다.

-연준의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이 있다.



△대부분 중앙은행 인사들은 인플레이션이 닥쳐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라구람 라잔 전 인도 중앙은행 총재 등을 제외하면 지난 수십 년간 훌륭한 중앙은행 인사를 찾기 힘들다.

-연준은 무엇을 해야 하나.

△(1979년 취임한) 볼커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연준은 일단 기준금리를 매우 높은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 또 무엇보다 볼커는 대통령으로부터 통화정책에 대한 모든 권한을 받았다. (당시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참모들의 불만에도 볼커의 초고금리 정책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중앙은행에게 필요한 모든 정책을 하라고 하는 정부를 한 곳도 알지 못한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연준은 침체가 오면 금리를 또 내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만약 우크라이나 사태가 진정된다면, 에너지·곡물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 그러면 연준은 또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할 것이다. 최소한 금리 인상을 멈추고 더 나아가 금리를 인하하는 어리석은 짓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에게 재앙이다. 한번 시작한 인플레이션은 잡기 어렵다. 볼커처럼 엄격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한국 등 주식 사지 않고 기다릴 것”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증시가 약세다.

△역사적으로 랠리가 막바지에 다다르면 새로운 투자자들이 시장에서 엄청나게 들어왔다. 지금이 그렇다. 최근 미국에서는 12~13년간 별다른 약세장이 없었다. 역사상 가장 긴 기간이다. 이번 약세장은 (역사적인 침체와 함께) 매우 심각할 것으로 본다. 통상 큰 약세장에서는 대부분 자산들의 가격이 50% 안팎 떨어진다. 많은 주식들은 80~90% 이상 폭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사야 하나.

△농업에 투자할 때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농산물 가격은 더 오를 것이다. 내가 어딘가 투자해야 한다면, 농업과 관련한 주식 혹은 펀드를 살 것이다. 금과 은 역시 투자할 만하다. 화폐 발행이 급증할 때 금, 은과 같은 실물자산은 여러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은을 추천한다.

-한국 금융시장은 어떻게 보나.

△나는 한국 주식을 일부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더 사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이 밝은 미래를 가질 수 있고 시장이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그 어느 곳의 주식도 매수하지 않을 것이다. 극심한 비관론이 사라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시기다.

로저스 회장은…

△1942년 미국 볼티모어 출생 △예일대 역사학과 △옥스퍼드대 정치경제학과 △퀀텀펀드 공동 창업(1970년) △로저스 국제원자재지수(RICI) 개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로저스홀딩스 회장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1970년대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돈 찍어내기(money printing)가 많았지만 세계적인 현상은 아니었다”며 “지금은 코로나19 이후 많은 국가들이 막대한 양의 돈을 찍어내고 빌리고 있다”고 했다. (사진=이데일리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