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해우소]과로사했지만 산재보험 보상을 못받는다?

by황효원 기자
2020.10.17 00:10:00

택배기사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
필적 유사한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대필 의혹 제기
전국민 산재보험가입토록 제도개선 추진... 택배노조 "전수조사 해라"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10월 8일 저녁, 택배 배달을 하던 택배노동자 고 김원종 씨는 가슴통증과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20년 경력의 택배기사인 김씨는 하루 15시간, 주 6일에 달하는 격무에 시달렸다. 김씨는 하루 평균 400여개의 택배를 배송했지만 산업재해보험(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전에 산재보험 적용 제외를 신청해서다. 택배회사와 본인이 매달 보험료를 감당하기에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14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김씨의 아버지는 “제발 먹는 시간만이라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 앞으로 택배기사 과로사는 우리 아들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박석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 공동대표는 “올해만 들어 벌써 8명이 택배 작업 중 돌아가셨다. 그 중 5명이 김씨와 같이 산재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 CJ대한통운 소속”이라며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과로사 택배기사 ‘산재적용 제외 신청서’ 대필 의혹까지…제외 기준은

김씨처럼 노동자들은 업무 중 과로사를 당하게 되면 산재보험을 통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특수고용노동자(특고)에 해당했던 김씨는 왜 ‘산재보험 적용 제외대상’에 속한 것일까.

산재 적용 제외 신청은 산재보험법 제125조 4항에 따라 법 적용을 원하지 않는 특고 노동자일 경우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사업주는 산재보험료 납부 등 각종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같은 제도로 인해 특고 노동자는 본인의 의사가 아닌 사업주들의 이익을 위한 제도로 악용되는 경우가 있어 그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생전 ‘산재적용 제외 신청서’를 작성했던 김씨도 CJ대한통운 대리점 요구로 ‘산재적용 제외 신청서’를 작성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사용자들은 보험료 납부 부담을 피하기 위해 특고 종사자에게 산재보험 적용제외신청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현장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노동자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사업자의 종용으로 보험 가입을 하지 못한 이들이 존재한다.

실제로 올해 업무 중 산업재해를 입어 보상을 신청한 특수형태근로 종사자(특고) 1700여명 가운데 10% 가량은 산재 승인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1명은 산재 승인을 받지 못한 것인데 특히 이 중 70% 이상은 퀵서비스 기사 등 배달 노동자로 확인됐다.

특히 김씨의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은 대필작성 의혹까지 나오고 있어 개선 요구가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이를 두고 전국택배연대노조는 조사 결과 김씨를 포함해 3명의 신청서가 본인이 아닌 다른 한 인물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택배 기사들을 모아놓고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를 쓰게 하거나 임의로 작성해 서명만 하게하는 경우, 사업주가 대신해서 제출하는 경우까지 불법 사례는 넘쳐난다”며 불법 사례 전수조사를 촉구했다.

이외에도 현행법상 택배기사 등 일부 특고 근로자들이 산재보험료를 사업주와 절반씩 부담해야 하는데 보험료의 부담 탓에 산재보험 가입을 꺼리게 한다.

“택배노동자 산재보험 강제…예외 적용 없다” 대책 마련 나선 당청

정치권에서 사회 곳곳 사각지대에 처한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 마련을 위해 관련 법안 발의에 나섰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국민 산재보험법’을 발의하며 전국민이 산재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연내 법안 통과를 강조했다. 개정된 법안에는 그간 특고가 적용제외를 신청하면 무조건 허용을 해주던 조항을 삭제하고, 일정기간 이상 휴업 등 대통령령이 정한 특별한 경우에만 적용제외를 허락해준다는 내용을 담았다.

노 의원은 “전국민 산재보험 법은 사실상 강제되고 있는 특고 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제도를 폐지해 모든 국민이 산재보험을 적용받아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도 “오래전부터 적용제외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자 노력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황 수석은 1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사업주 단체와 노동계 사이 1차적으로 합의한 것이 산재보험만이라도 적용하자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황 수석은 “이번 국회에서 새로운 법안을 제출해 일을 장기간 쉬거나 육아, 질병 등 사유가 아닌 한 적용제외 신청을 할 수 없도록 엄격히 제한하는 방향으로 보호를 강화하는 구상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계에서도 ‘더 이상 위험의 외주화’는 안된다며 현장 관리자뿐만 아니라 최고 경영자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는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대한민국은 한 해 2400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는다”며 “일하다가 노동자들이 죽어도 현장 책임관리자만 처벌을 받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회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고 있는데 최고경영자에게도 법적 책임을 제대로 묻는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