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 경제 다시보기]일본 반면교사…돈 풀기는 만병통치약인가

by김정남 기자
2016.04.30 08:00:00

우리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이야기

이른바 ‘아베노믹스’로 잘 알려진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주 전통 경제학의 상식을 깨뜨린 ‘비전통적’ 통화정책 이야기를 해드렸는데요. 이번주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요즘 양적완화(QE)만큼 경제계를 강타하는 말이 또 있을까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요.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가 정국의 최대 화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주는 형국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불리는 양적완화는 정책금융(정부가 특정업종에 선별 지원하는 금융) 성격이 더 강하긴 합니다. 보통 양적완화가 전반에 돈을 ‘뿌리는’ 것이라면 정책금융은 특정 집단에 돈을 ‘꽂아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없는 돈을 찍어낼 수 있는 발권력을 동원해 직접 출자를 하든 채권을 사든,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정책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본격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길로 들어서는 걸까요.

이번주는 이웃나라 일본을 예로 들어볼까 합니다. 제가 지난주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양적완화의 아버지’라고 표현했지요. 하지만 버냉키 전 의장이 ‘원조’는 아닙니다. 전세계 첫 양적완화는 지난 2001년 3월 일본에서 시작됐습니다.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이 있지요. 일본은 1990년대 초반부터 진행된 저성장 기조를 탈피하고자 머리를 싸맺습니다. 결국 가장 먼저 교과서에 없는 길로 접어들었지요. 다만 5년의 첫 양적완화 시도는 큰 재미를 못 봤습니다.

양적완화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금융위기 때입니다. 2010년 10월. 일본은행(BOJ)은 위기 직전 기준금리(0.5%)도 가뜩이나 낮았는데, 이를 제로 수준으로 확 내려버립니다. 통화를 완화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부실해진 은행과 기업을 구제해 경기를 살려보겠다는 겁니다. 일본은행은 이후 장기국채, 금융기관 보유주식, 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CP) 등도 사들입니다. 지난주에 설명을 드렸지요. 중앙은행이 시중에 있는 자산을 사들이면, 그 자산 가격에 해당하는 현금이 다시 시중으로 나가게 되고요. 그러면 시중에 현금이 넘치는 겁니다. 인류 탄생 이래 금리 수준이 가장 낮음에도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으니 나왔던 고육지책이었지요.

그런데 경기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행은 위험을 더 감수합니다. 회사채 매입 등 중앙은행이 신용위험을 더 적극적으로 부담하는 수단까지 도입한 것이었지요. 일본은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최근 경제계에서 많이들 화제에 오르지요.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금리, 그러니까 돈을 맡기며 오히려 수수료를 내는 제도까지 도입하기에 이르렀지요.

그렇다면 그 성과는 있었을까요. “글쎄”라는 평가가 더 우세한 것 같습니다. 당장 경제성장률이 부진합니다. 지난 2013년 내세웠던 실질 성장률 목표 2%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3년 1.4%를 기록했지만, 2014년(0%)과 2015년(0.4%)은 그야말로 초저성장이었지요.



무엇보다 기업이 뛰지 않고 있습니다. 엔화를 무진장 풀어대니 통화는 약세를 띠고 실질금리는 하락하면서, 기업 수익은 분명 좋아지는 것 같긴 합니다. 도쿄증권거래소 1부 기업들의 주당 수익이 2012년 말 12.97엔이었는데요. 2013년 말(13.83엔), 2014년 말(16.99엔), 2015년 말(16.63엔)로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투자를 안한다는 점입니다. 현재 일본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설비투자가 미미하다는 건 ‘경제 첨병’인 기업이 미래를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늘만 살고 내일을 준비하지 않는 기업의 장래는 뻔하지 않겠습니까. 기업의 장래는 곧 나라 경제의 장래이지요.

가계도 돈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2014년 당시 민간소비 증가율이 -0.9%였는데, 지난해(-1.2%) 오히려 뒷걸음질 쳤습니다. 가계와 기업이 움직이지 않는 경제는 무슨 수를 써도 살아날 방법이 없습니다. 무차별 돈 풀기만 15년여, 일본 경제는 여전히 물음표인 것 같네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경제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게 있습니다. 일본의 고령화 문제입니다. ‘늙은 경제’라고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경제가 좋다는 건 쉽게 말하면 언제든 아무나 사업을 저질러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흐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더 소극적으로 될 가능성이 크겠지요. 그 세대가 사회의 주류인 게 현재 일본입니다.

또 사람을 움츠려들게 하는 게 있지요. 바로 빚입니다. 가계든 기업이든 정부든 부채가 많으면 지갑을 열기 어렵지요. 일본의 부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실기업을 정리하기는커녕 양적완화로 살려놨으니, 일본 경제가 꿈틀대기 어려운 겁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어떻습니까. 듣다 보니 남 얘기 같지 않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일본 경제가 우리와 비슷하다고 하는 건 바로 이런 구조적인 환경이 너무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경제의 발자취는 우리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는 뜻입니다. 그나마 일본은 튼튼한 기축통화국입니다. 엔화를 아무리 풀어도 국제적으로 사주는 곳이 있으니 감당이 되지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원화를 무차별적으로 찍어내는 걸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일본보다 훨씬 더 큰 후폭풍이 올 수 있습니다.

결국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경제 구조를 바꾸는 고통없이 회복은 요원합니다. 아무리 돈을 풀어도 건강하게 쓰이지 못하면, 그러니까 부실기업이 연명하는 용도로 쓰인다면 부작용만 커질 겁니다. 부상 당한 축구선수의 길은 수술 후 재활 혹은 은퇴, 둘 중 하나이지요. 진통제에 의존해 뛰면 팀 전체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우리 경제 전반에 구조개혁 목소리가 높습니다. 구조조정 작업도 한창이지요. 그 어느 때보다 일본 경제를 다시 한번 돌아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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