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이어 한국노총과도 정면충돌…尹 노동개혁 좌초위기

by김은비 기자
2023.06.08 05:00:00

7일 긴급 중앙집행위에서 경사노위 불참 결정
산하조직 간부 강경 진압 발단…"예견된 수순"
당분간 노정 갈등 지속에 노동개혁 표류 우려
정부 노동개혁 일방향 추진 가능성도

[세종=이데일리 김은비 조용석 기자]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대통령 직속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를 전면 중단하면서 정부와 노동계 사이의 공식적 대화 창구가 사실상 완전히 닫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악화일로를 걷던 노정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양대 노총이 모두 등을 돌리면서 안그래도 지지부진한 노동개혁의 추진 동력은 더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7일 오후 전남 광양시에서 열린 한국노총 긴급 투쟁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광양경찰서를 향해 가두행진하고 있다.(사진 = 연합뉴스)


근로시간·임금체계로 갈등고조…강제진압으로 ‘폭발’

한국노총은 7일 한국노총 전남 광양 지역지부 회의실에서 제100차 긴급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화의 전면 중단을 결정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심판을 위해 결단이 필요하다는데 노조 전 조직이 목소리를 모았다”며 “그 일환으로 경사노위 산하 위원회 등 모든 경사노위 대화기구에 불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달 31일 발생한 한국노총 금속노련 간부에 대한 경찰의 강경 진압이다. 이날 중앙집행위원회가 열린 광양은 포스코 광양제철소 하청업체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망루 농성을 벌이던 한국노총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이 지난달 31일 체포된 지역이다. 한국노총은 경찰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회의 장소를 광양으로 정했다.

금속노련은 한국노총 산하 최대 산별 조직이다. 앞서 근로시간 제도·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 개혁으로 국내 제1노총인 한국노총과 정부 사이 감정의 골이 깊어지다가 정부가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추진하면서 대립이 첨예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 산별 조직의 위원장(김만재)과 사무처장(김준영)의 잇따른 체포로 갈등이 폭발했다. 당초 지난 1일로 예정됐던 윤석열 정부 첫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는 체포 소식에 하루 전 무산됐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금속연맹 위원장과 사무처장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구속한 것에 대해 더 이상 윤석열 정부와 함께할 수 없다고 봤다”며 “윤석열 정부 심판 투쟁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예견된 사태로 봤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노동개혁 추진 과정에서 빚어진 노정갈등의 골이 깊어져왔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올해 2월 정부의 노동 개혁을 ‘노동 개악’으로 규정 짓고 민주노총과 연대 투쟁을 결정했다. 지난 5월에는 7년 만에 노동절 서울 도심 집회를 재개하기도 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 정부에서 노조를 적폐집단으로 공격하면서 노동개혁을 너무 강하게 밀어붙였다”며 “또 현 정부 들어서 경사노위 가동은 이미 사실상 멈춘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사회적 대화 중단 노동계·정부 양쪽에 부담

사회적 대화 중단만으로도 정부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노총이 경사노위 탈퇴까진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국노총은 이날 탈퇴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김동명 위원장 등 집행부에 위임하기로 했다. 내부에서도 경사노위 탈퇴를 두고는 강경 의견과 정부의 반노동 정책은 반대하지만 대화 채널은 살려둬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사회적 대화 재개의 여지는 남겨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탈퇴가 당장 현실화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파악된다.

민주노총이 1999년부터 경사노위에 불참하는 가운데 한국노총까지 사회적 대화 ‘전면 중단’을 선언하면서 현재도 지지부진한 노동 개혁은 큰 장벽을 마주하게 됐다.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불참 선언으로 윤석열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 중 하나인 노동 개혁에도 거대한 먹구름이 드리우게 됐다. 노동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루려면 노동계 지지는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전면전은 되도록 피해야 하는데, 양대 노총 모두가 정부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간 역대 정부가 노동개혁을 추진하다 거센 반발에 부딪힐 때면 경사노위를 통해 절충점을 찾아왔다는 점에서도 우려가 크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근로시간 단축, 이명박 정부의 임금동결·일자리 유지 노력 등 경제위기 극복 합의 등이 대표적이다.

경사노위는 한국노총의 불참 선언으로 사실상 식물위원회로 전락하게 됐다. 경사노위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더 나은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를 구축해 미래세대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사회적 대화”라면서 “한국노총 입장을 존중하지만, 산적한 노동 개혁과제 해결을 위해 대화에 다시 나서주길 희망한다”며, 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위원회도 이른 시일 내에 노사정 대화가 새롭게 시작되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노동개혁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 노조 조직율은 약 14%에 불과하고, 윤석열 정부는 “양대노총의 기득권을 철폐하고, 비노조 근로자의 권익을 높인다”는 기조 아래 ‘노조 때리기’로 그간 지지율 상승 효과를 얻어왔기 때문이다. 또 정부는 그동안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새로고침) 등 노동계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오기도 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노조에 대한 강경 대응 입장을 바꾸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