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여야, 승패 떠나 국민 앞에 겸손해야

by이진철 기자
2021.04.12 05:00:00

與, 네거티브전에도 참패 분노한 민심 무서움 보여
가을 대선정국 본격화, 與도 野도 오만 빠지면 유권자 외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새로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보궐선거가 끝났다. 여기서 높은 투표율 속에서 야당 후보들이 완전히 압승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 선거가 유권자들의 누적된 불만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정치적 신뢰가 낮을 때는, 오프라인에서의 정치 참여가 활성화 된다. 오프라인에서의 정치참여의 대표적인 예는, 투표와 시위다.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어서 시위로 자신의 불만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로 자신들의 불만을 분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선거는 정치적 불신에서 파생되는 “분노 투표”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분노의 대상이 야당인 경우는 거의 없다. 야당은 권력, 즉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노의 대상은 당연히 권력을 가진 여당일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분노의 원인은 다양하다. 평창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당시 등장했던 불공정에 관한 문제가 인국공 사태를 거쳐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에 이르기까지 계속 누적돼 왔다는 점, 여권 전반의 고질적인 병폐라고 할 만한 “남 탓”과 “내로남불”의 반복, 독선과 아집에 찬 모습, 그리고 부동산 정책으로 인한 “고통의 보편화” 등이 분노의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유권자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정 정당 혹은 정치인에게 일단 덧씌워진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고, 또 부동산 가격의 급등에 관한 문제는 단 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유권자들의 분노가 ‘누적의 결과’라면 더욱 해결하기 어렵다. 이런 유권자들의 분노는 정권 심판론이라는 선거 구도를 만들었다. 선거 구도란 정치권에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보편적 정서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형성된 선거 구도를 인위적으로 바꾸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당은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네거티브 캠페인은 박빙의 승부를 벌일 때는 아주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지만 후보 간의 지지율 격차가 큰 경우에는 별반 소용이 없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선거 구도를 뒤집을 힘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일관하면 유권자들은 더욱 피곤해진다. 분노를 유발한 존재가 피곤하게 만들기까지 하니, 여당을 외면하는 현상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들이 합쳐져 이번 선거 결과를 만들었다.

많은 이들은 야당이 좋아서 찍었다기보다는 여당이 싫어서 야당을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말은, 선거란 본래 최악을 피하는 선택의 과정이지, 최선을 선택하는 과정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대부분의 경우, 선거에서 승리하는 측은 차악이고 패하는 측은 최악이라는 말이다.

결국 정치판에서의 선거란 차악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진짜 좋아하는 정당에 투표했다는 유권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유권자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이런 투표 행태를 일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은 이번에도 최악의 자리에 앉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경쟁을 벌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쟁에서 최악의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여당은 민심 이반의 원인을 최대한 제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다. 현 정권의 임기가 1년 남짓 남았고, 대선 정국이 본격적으로 도래할 때를 9월 정도로 잡으면, 현 정권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각을 하고 뭔가 바뀐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겠지만,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야당은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것처럼, 극단적 정치 세력과는 손을 잡지 말아야 하는데, 대선에서도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이 문제다. 한 표라도 아쉬운 것이 대선 판이기 때문에, 그런 결기를 보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분명한 점은 여당과 야당 모두 유권자와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권자의 마음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유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